약 4300년 전 만들어진 정교한 은잔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주 탄생 묘사가 들어갔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및 캐나다 토론토대학교가 중심이 된 국제 연구팀은 1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Journal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ociety 11월호에도 실렸다.

1970년 발굴된 아인 사미야 은잔의 복제품 <사진=Journal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ociety 공식 홈페이지>

이번에 분석된 은잔은 1970년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청동기시대 유적의 무덤에서 발굴했다. 높이 약 8㎝의 아담한 크기로, 연대 측정 결과 약 4300년 전 제작됐다. 아인 사미야 은잔으로 불리는 유물의 표면에는 뱀이 지배하는 혼돈의 세계 및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의 질서 등 두 가지 중대 사건이 묘사됐다.

조사 관계자는 “첫 번째 장면은 뱀이 지배하는 원초적 혼돈 상태를 나타낸다. 천지가 막 태동해 인간과 동물이 뒤섞인 세계가 새겨졌다”며 “이어진 장면에서는 인간이 태양을 높이 들고 있다. 이는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고 우주가 형성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미야 은잔의 표면에 새겨진 두 가지 문양. 하나는 우주의 탄생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Journal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ociety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은잔 표면의 조각이 여러모로 우주의 시작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신화 중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인들의 종교와 사상을 기록한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와 관련됐다고 봤다.

에누마 엘리시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회자된 세계 창조 신화다. 영웅신 마르두크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와 치열하게 싸워 이긴 뒤 그 몸을 찢어 하늘과 땅을 만들어낸다는 장대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바빌론 신화 속 영웅신 마르투크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의 싸움을 묘사한 은잔 조각 <사진=Journal of the Ancient Near Eastern Society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이상하게도 아인 사미야 은잔에는 에누마 엘리시에 담긴 싸움 등 폭력적인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술잔의 도상은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과정을 보다 상징적이고 평화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원래 바빌론 신화와 다른 더 오래된 독자적 우주 신화를 그렸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인간이 태양을 높이 든 구도는 고대 근동지역에 널리 퍼진 하늘의 배(빛의 배) 모티브와 연관이 있다. 고대인은 태양과 달이 하늘을 여행하는 것은 신성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며 “이 점에서 아인 사미야의 은잔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주 탄생 신화를 담은 유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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