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풍습 ‘카니발리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 드라마 '한니발'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사전적으로 인간이 인육을 먹는 무시무시한 풍습을 의미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연쇄살인마 중 일부가 희생자의 팔다리며 장기를 이용해 음식을 해먹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영국, 호주, 파푸아뉴기니 공동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진 카니발리즘은 당시 놀라울 것 없는 일종의 문화였다.
충격적인 사실은 인류가 사람의 몸 중에서 뇌까지 먹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뇌를 먹음으로써 각종 감염증, 특히 프리온병(프리온이라는 일종의 단백질이 뇌에서 병변을 일으키는 것. 알츠하이머가 대표적)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연구팀은 인류가 진화를 거치며 본능적으로 뇌를 먹었다고 추정한다. 런던대학 부속의학연구소 사이먼 교수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인류가 자연도태, 즉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 뇌를 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인류의 카니발리즘을 사회적 식인과 병리학적 식인 등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자는 식인을 문화의 일부로 용인한 것이고, 후자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말미암은 식인이다.
■문화∙사회적 카니발리즘
학자들은 고대 아스텍문명에 대규모 집단식인풍습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사회적 식인이라고 손꼽는다. 스페인 사람에 의해 보고됐다는 아스텍인들의 집단식인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식인문화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이 보고가 스페인의 정복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꼼수였다고 본다.
하지만 대규모 식인풍습을 묘사한 아스텍 그림이나 벽화, 조각이 이미 여러 차례 발굴됐다. 아스텍문명의 발원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유적 발굴에서 나온 사람의 뼈에서도 식인풍습의 흔적이 발견됐다.
사회적 관습으로 묶은 카니발리즘을 설명하면서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족을 빼놓을 수 없다. 험난한 산악지역에 정착했던 포레족은 사람을 먹는 식인풍습으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바로는, 포레족은 19세기 말부터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인육을 먹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1930년대 후반이 돼서야 알려졌다. 당연히 죽은 사람을 먹은 포레족은 다양한 질병에 걸렸는데, 식인풍습이 한창일 때 많게는 매일 200명가량 원인모를 병으로 죽었다.
■스코틀랜드 식인종 소니 빈
사회적 식인은 유럽에서도 나타났다. 15세기 스코틀랜드 산맥에 살았다는 소니 빈 일족이 산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유명하다.
일족은 소니 빈이라는 사내와 그의 아내, 자녀 14명이 근간이다. 근친에 따라 태어난 아이들을 합해 50명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주로 길을 잃어버린 여행자를 노린 이들은 나중에 식인행각이 발각돼 모조리 체포됐고, 극도로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됐다.소니 빈 일족의 경우가 병리학적이 아닌 문화∙사회적 식인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적어도 이들이 생존을 위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적군을 먹은 아나사지
북미에 정착했던 아나사지(Anasazi)족의 식인풍습도 유명하다. 아나사지족은 기원전 300년경부터 1700년대까지 북미 남서부에 살았던 민족이다.
아나사지족이 기원한 지역에서 발굴된 자료에 따르면 이 부족은 적과 싸움에서 죽인 병사들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식인풍습이 미개한 지역에만 국한된다고 주장했던 서구 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물론 일부 과학자들은 아나사지족의 식인풍습을 부정한다. 아나사지족이 단순히 적을 위협하는 차원에서 식인을 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뜨거웠다.
■사회적 식인의 의미들
인류학자들의 관점에서 사회적 식인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유형과 나름의 의미가 파악된다.
아나사지족의 경우 자신들의 강함을 과시하고 적을 두려움에 빠뜨리기 위해 시체를 먹었다. 일부에서는 죽은 자의 시체를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다고 믿었고, 또는 이런 행위가 죽은 이를 추모한다고 여겼다. 죽은 적의 시체를 먹어 적의 용맹함을 인정하는 부족도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죄인의 시체를 공개석상에서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면서 죄의 중함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소니 빈 일족처럼 단순히 살기 위해 사체를 먹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공자가 인육을 먹었다는 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들에게만큼은 식인이 지금의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반사회적이고 반문화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부 부족의 식인은 강한 사회를 상징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살기 위해 먹었다
식인은 생사의 기로에 처한 사람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행되기도 했다. 흔한 케이스가 사고인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얼라이브’로 유명한 안데스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다.
1972년 당시 럭비선수 등 40명 넘는 승객을 태우고 날아가던 비행기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안데스산맥에 추락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악천후 속에서 기약 없는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던 생존자들은 결국 눈에 파묻힌 시체를 먹기 시작한다. 물론 끝까지 식인을 거부하다 굶어죽은 사람도 있었다.
친구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남성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그는 “친구의 몸을 먹는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빠졌지만 한편으로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친구의 몸은 혼이 빠져나간 고깃덩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안데스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를 모티브로 한 영화 ‘얼라이브(Alive)’는 1993년 개봉해 나름 성공을 거뒀다. 에단 호크는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도너 원정대 사건
사고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식인은 또 있다. 일명 ‘도너 원정대(Donner Party)’ 사건이다.
1846년 척박한 미국 동부에 살던 조지 도너는 가족과 함께 비옥한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총 87명으로 구성된 도너 원정대는 캘리포니아를 목적지로 삼아 대장정에 올랐다. 하지만 험난하기로 유명한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 전원이 조난당했고, 이로부터 약 2개월간 산속을 헤매며 시시각각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였다.
겨우 산맥 중턱으로 빠져나온 이들은 이번엔 큰 눈을 만났다. 이미 식량은 바닥난 상태. 혹시나 올지 모를 구조대를 기다리기로 한 생존자들은 탈진해 죽은 가족의 시체를 먹기에 이른다.
원정대의 상황은 끔찍했다. 죽은 자들을 모두 먹어치운 생존자들은 일부러 무리를 이간질해 서로 죽이게 한 뒤 시체를 먹었다. 이듬해 겨우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원정대 절반가량이 죽은 상태였다. 당시 구조대의 일원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원정대가 머문 자리는 지옥 그 자체였다. 사람 뼈와 여기저기 파 먹힌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손발, 해골, 흩어진 머리카락 등 상상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앙상한 생존자들은 마치 악마처럼 보였다. 생존자 중에는 생후 13개월 된 빼빼한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 가슴을 가리키며 젖을 보채고 있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