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은 실로 다양한 용도를 갖고 있다. 미관을 위해 정성껏 수염을 기르는가 하면, 얼굴에 난 흉터를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염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이슬람권에서 남성의 수염은 한 사람의 상징으로 중시된다. 이렇듯 수염은 패션과 문화, 종교, 관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 유타대학교 연구팀은 남성의 수염이 진화를 거듭해 왔으며, 격렬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길러졌다는 가설에 주목했다. 화려하고 위압감 있는 수염 자체가 싸움에 유리할 뿐더러, 상대방의 공격을 입었을 때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널리 길렀다는 가설은 꽤 오래됐다.
사실 남성의 골격과 근육이 싸움에 유리하도록 진화했다는 과학적 증거도 있다. 남성 얼굴형 자체가 싸움에서 입을 부상으로부터 두개골과 장기를 보호하도록 진화했다는 설도 있다. 물론 긴 수염은 적에게 잡혀 치명상을 입을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고대 전사들은 다양한 공격에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기록도 있다.
유타대 연구팀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얼굴 형태의 블럭을 3개 만들었다. 이후 양가죽으로 감쌌는데, 하나는 털이 하나도 없는 가죽, 다른 하나는 일반 양모가 붙은 가죽, 또 하나는 양모가 아주 무성한 가죽이었다.
연구팀은 각각의 얼굴 블럭에 동일한 충격을 가하고 상황을 관찰했다. 참고로 연구팀이 양가죽을 사용한 것은 양의 모낭이 인간과 가장 비슷해서였다.
실험 결과 예상대로 충격에 가장 강한 것은 털이 수북한 가죽이었다. 털을 깎아낸 가죽과 일반 양털 가죽에 비해 최대 30% 충격을 흡수했다. 특히 충격 강도를 높이자 털이 없는 얼굴 블럭과 일반 양모 블럭은 시간을 달리 하며 갈라지더니 깨져버렸다. 털이 수북한 가죽을 감싼 블럭은 제법 오랜 시간을 버텼고, 결과적으로 45%가량 파손됐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이 실험 결과는 'Integrative Organismal Biology'에도 실려 주목 받았다.
연구팀 관계자는 "텁수룩한 수염은 턱 같은 골절되기 쉬운 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한다"며 "피부와 근육의 열상이나 타박상 같은 상처도 막아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리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은 털 한올 한올이지만, 이것들이 모이면 큰 충격을 얼굴 전체로 분산시킬 수 있다"며 "아무리 수염이라도 굵기나 세밀도, 밀도, 곱슬거림 정도 등 모질에 차이가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격 흡수의 차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