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냄새(smell of fear)'. 판타지 또는 스릴러 소설이나 범죄영화를 보면 가끔 등장하는 대사다. 피해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빌런이 "네 공포의 냄새를 맡고 쫓아왔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어렵잖게 떠오른다. 그런데 과연 이 공포의 냄새란 실존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과장된 표현 같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겠다는 희한한 생각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이 있다.

2009년, 화학자가 포함된 독일의 한 연구팀은 대학생 피실험자들을 모집한 뒤 '공포의 냄새' 측정에 나섰다. 우선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실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A와 B, C 세 그룹으로 나눴다. A그룹은 헬스용 자전거를 타게 했고 B그룹은 실전 면접시험을 보게 했다. C그룹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에 들어가 A와 B그룹 학생들이 흘린 땀냄새를 맡게 했다. 

A그룹은 일상적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흘렸다. 이와 달리 B그룹은 합격이라는 목표 때문에 아주 긴장된 상태에서 면접에 임했다. 연구팀은 두 그룹 피실험자들이 흘린 땀의 구성물질이 원천적으로 같더라도 뭔가 다른 점이 있으리라 가정했다. 

인간의 공포라는 감정이 땀 속 화학물질에 변화를 준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를 끈다. <사진=영화 '인시디어스' 스틸>

결과는 놀라웠다. C그룹의 뇌를 스캔한 결과 A와 B그룹 땀냄새에 각각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면접에 참가한 B그룹 학생들의 땀냄새를 감지한 C그룹은 공감과 사회적 신호, 타인에 대한 이해를 관장하는 뇌 부위 활동이 활발했다. 반면 A그룹 학생들의 땀냄새에는 뇌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잔뜩 긴장한 B그룹 학생들의 땀은 평소 흘리는 땀과 다르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 관계자는 "신경이 잔뜩 곤두선 상태에서 흘리는 땀은 불안을 나타내는 일련의 화학물질 또는 신호를 함유했을 가능성이 밝혀졌다"며 "냄새를 맡은 학생 자체는 별 느낌이 없더라도 뇌는 분명 다른 반응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텍사스 라이스대학교 심리학자들도 공포의 냄새를 실증하려 했다. 이들은 공포영화와 코믹영화를 A와 B그룹에 각각 보여주고 땀을 채취했다. C그룹 피실험자들에게 웃는 얼굴과 보통 얼굴, 공포에 질린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A와 B그룹의 땀냄새를 맡게 했다. 

그 결과 코믹영화를 본 사람보다 공포영화를 관람한 사람의 땀냄새를 맡은 C그룹은 보통 얼굴을 보고도 공포에 질렸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공포라는 감정이 사람의 땀 속에 일련의 화학변화를 일으킬뿐 아니라 제3자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렸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페로몬을 통해 서로 다양한 신호를 공유한다. <사진=pixabay>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은 공포에 질렸을 때 흘리는 땀이 제3자에게 보통 땀과는 다른 느낌을 줄뿐 아니라, 그 냄새를 맡은 사람까지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공포영화와 일반영화를 각각 관람한 피실험자들의 땀을 채취한 뒤 또 다른 피실험자들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이후 공포나 안도, 분노와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보여주고 조건에 따라 특정 물건을 골라내도록 했다.

이 시각테스트 결과 공포영화를 본 사람들의 땀냄새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은 일반적 물건을 골라내면서도 표정이 일그러지고 눈동자 움직임이 불안했다. 일반영화를 본 사람들의 땀냄새에 노출된 피실험자들은 표정이나 눈동자 움직임 변동이 미미했다. 

위의 실험결과들을 보면 인간은 시각이나 촉각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처럼 후각으로도 일종의 메시지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 역시 동물처럼 페로몬(pheromone)을 감지할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이 힘을 받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참고로 많은 포유동물들은 감정 전달 및 감지, 공유를 위해 비서골기관(vomeronasal organ, VNO)을 갖고 있다. 야콥슨 기관(Jacobson's organ)으로도 부르는 비서골기관은 포유동물의 비강 벽 속에 자리하며, 한쪽 끝이 비강과 연결돼 호르몬을 감지한다. 인간의 경우 이 기관이 발견되지 않고 일부는 태아 초기에 흔적만 관찰된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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