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하면 떠오르는 국가가 프랑스다. 샤넬이나 디올,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등 세계적 명품회사가 즐비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그니처 라인은 오랜 세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세계 패션계를 선도하는 우아한 프랑스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좀 지저분해진다. 프랑스는 귀족문화가 발달한 고상한 국가로 여겨지는데, 이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일 뿐이다. 루이 15세 시절, 파리의 귀족들은 야생동물의 분비물이나 똥을 향수로 애용한 충격적인 과거를 갖고 있다. 이 놀라운 사실은 프랑스 건축가이자 저명한 미술사가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 르 뒤크의 기록에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타구니 분비물이 향수로
1700년대 유럽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생관념이 형편없는 곳이었다. 프랑스 왕가는 더러운 화장실을 성에 들일 수 없다며 옥외 변소를 지었는데, 아무리 청소해도 배설물이 넘쳐 악취가 진동했다. 어디서 밟을지 모를 똥 때문에 뒤꿈치가 길쭉한 하이힐이 개발됐을 정도다.
당시 사람들도 똥냄새는 싫어했지만 야생동물의 배설물이나 분비물은 이상하게 향수처럼 애용했다. 18세기 전반, 루이 15세 시절 프랑스에서 유행한 향수들은 사향노루의 복부나 사향고양이의 사타구니 분비물을 썼다. 향고래의 창자로 만든 용연향 등 야생동물들의 고약한 냄새를 몸에 뿌리는 것이 귀족의 패션 트렌드였다.
■왜 야생동물의 배설물일까
자연 상태의 사향(머스크, musk)이나 고래 창자 추출물은 배설물 이상의 악취만 풍길 뿐이다. 하지만 패션의 장인들은 여기에 조금만 손질을 가하면 어엿한 향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메스꺼운 냄새와 머리가 맑아지는 향은 농축 상태만으로 차이가 난다. 사향은 그냥 두면 고약한 냄새에 지나지 않으나 희석해 다른 향과 섞으면 향긋한 향수로 변신한다.
사람은 보통 기분을 전환하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향수를 뿌린다. 하지만 그 원료를 들여다보면 구역질이 날 수도 있다. 생선의 비린내나 찌든 베이컨 냄새, 기름과 땀이 뒤섞인 두피 냄새, 코 안쪽으로 훅 들어오는 발사믹 등 악취에 가까운 것들이 수두룩하다.
■귀족들은 왜 분비물을 썼을까
신기한 건 프랑스 귀족들이 사향 같은 천연 배설물을 전혀 가공하지 않고 직접 몸에 뿌렸다는 사실이다. 동물 특유의 악취가 향수로 인기를 얻은 건 당시 사회상과 사람들의 관념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기록을 보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귀족들은 당시 좋은 향기보다 강렬한 냄새를 선호했다. 이런 것들이 병자나 죽어가는 사람이 풍기는 불길한 냄새를 없애주고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된다고 굳게 믿었다. 흑사병(페스트)이나 콜레라 같은 대규모 전염병이 빈발한 유럽 사회상이 이런 생각을 만들었다.
야생동물의 분비물 냄새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실용적 목적도 있다. 그 시절 의사들은 비강이 뇌와 직접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즉 냄새가 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이런 의미에서 머리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대한 냄새 치료가 유행했다. 코에 동물의 배설물을 갖다 대거나 사향 같은 가공하지 않은 냄새를 지속적으로 코로 들이마시게 했다. 우연히 효과를 보면 해당 치료법은 귀족뿐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일종의 아로마 테라피(향기치료, aroma therapy)인 셈이다.
여행자들이 천연 사향을 들고 다닌 것도 이런 이유였다. 여성들은 향고래의 내장에서 만들어지는 용연향을 담은 목걸이를 걸쳤다. 사향이나 용현향을 담은 작은 주머니가 달린 귀걸이도 유행했다.
귀족과 서민의 일상은 물론 의학계까지 사로잡은 유럽의 악취 트렌드는 18세기 중반까지 인기를 끌다 급격하게 쇠퇴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의사들은 환자에 처방되는 강한 냄새는 오히려 해롭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무렵 위생학이 틀을 잡으면서 야생동물의 배설물을 향수처럼 사용하는 데 대한 거부반응도 생겨났다. 귀족들은 드레스의 주름이나 부채에 동물 분비물을 뿌리는 대신 현재의 향수처럼 상큼한 꽃향기나 은은한 귤껍질 냄새를 선호하게 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