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1984'는 코로나19로 인한 영화들의 집단 상영 연기로 인해 유독 주목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발표된 트레일러 역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트레일러에 세계적인 히트곡 뉴 오더의 '블루 먼데이(Blue Monday)'가 배경으로 깔리며, 본편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팬들은 본편에서도 뉴 오더와 같은 신시-일렉 계열이나 뉴 웨이브 팝송이 다수 등장, 풍요와 자유로움으로 흥청대던 당시 분위기를 재연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직접 본 팬들에게 귀에 익거나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온통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장중한 OST로 채워졌고, 1980년대 팝송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주비행 중에도 1970년대 디스코 음악 테이프를 틀어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라디오 음악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설정의 '범블비'와 같이 팝이 깔릴만한 상황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웰컴 투 더 플레져돔' <사진=FGTHVEVO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Frankie Goes To Hollywood - Welcome To The Pleasuredome' 캡처>

영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노래는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의 '웰컴 투 더 플레져돔(Welcome to the Pleasuredome)'이다. 다이애나가 스미소니언 파티장에 들어갈 때 처음 플레이되고 바브라와 맥스로드가 드림 스톤에 접근하려는 동안 계속되는 등 영화 속에서 수차례 반복된다.

남성들의 '우하 우하'라는 반복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리버풀 출신의 밴드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데뷔 앨범의 셀프 타이틀곡이다. 그러나 국내 팬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이 앨범의 첫 싱글곡 '릴렉스(Relax)'는 영국과 미국 팝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외설적인 분위기로 인해 국내에서는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아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의 앨범 자체가 국내 발매를 포기했으며, 당연히 이 앨범의 4번째 싱글인 웰컴 투 더 플레져돔이 알려질 기회는 없었다.

그나마 국내에도 잘 알려진 두 곡을 제대로 들은 관객이 몇 명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1980년대 최고의 뉴웨이브 밴드 듀란듀란의 대표곡 '리오(Rio)'와 당시 센세이셔널한 일렉트로 사운드로 세계적 히트를 기록했던 개리 뉴먼의 '카즈(Cars)'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 흘러나온다.

개리 뉴먼의 '카즈(Cars)' <사진=The Arkive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Gary Numan - Cars' 캡처>

숱한 히트곡을 제치고 개리 뉴먼의 덜 알려진 곡 'M.E.'가 스미소니언 파티의 후반부에 잠깐 깔리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팝 네 곡이 모두 영국 가수들 노래라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4년은 사실 팝의 전성기였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가 히트했고 듀란듀란이나 컬처클럽 등 영국 뉴웨이브 밴드가 '제2의 미국침공'을 펼치던 시기다. 에로틱 무드곡의 대명사가 돼버린 왬의 '케어리스 위스퍼(Careless Whispers)'와 록밴드 반 헤일런의 신시-록 명곡 '점프(Jump)'가 나란히 차트 1위를 찍었다. 여자가수 중에서는 마돈나와 신디 로퍼가 데뷔한 해였다.



영화 속에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아리아 '그대는 알고 있죠(Voi Che Sapete)'와 2007년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썬샤인'에 등장한 존 머피의 피아노곡 'Adagio in D Minor'도 흘러나온다. 영화 '폼페이'(2014) 주제곡 'I Won't Leave You'도 만날 수 있다.

'라이언 킹'이나 '인터스텔라' '글래디에이터' '레인맨' 등으로 아카데미를 휩쓴 한스 짐머의 음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라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다만 '원더우먼 1984'의 '음악적 분위기' 만큼은 별로 1984년스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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