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영화 '원더우먼 1984'이 때아닌 페미니스트 논란에 휘말렸다. 원더우먼이 원래의 정체성과는 달리 남자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힘까지 포기하려는 장면이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럴만도 한 게 원더우먼은 DC코믹스에서 페미니스트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유명하다. 

■태생은 페미니스트
원더우먼의 정체성은 널리 알려진 편이다. 1941년 처음 코믹스에 등장할 당시 출판사로부터 아래와 같이 아예 보도자료가 공표됐기 때문이다.

"원더우먼은 강하고 자유롭고 용감한 여성 어린이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표준을 설정하기 위해 마스턴 박사에 의해 고안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 맞서고, 여성이 남성이 독점하는 운동, 직장 및 직업에서 자신감과 성취를 얻도록 고무시키는 인물이다."

원더우먼과 치타의 팬아트 <사진=트위터>

당시 슈퍼맨과 배트맨으로 인기를 끈 DC코믹스는 2차 세계대전이 심해지며 '남성들의 미화된 폭력'이란 비난을 받고 있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거짓말 탐지기의 발명가, 극작가인 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페미니즘 지지자였던 마스턴 박사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아마존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과 아테나의 지혜, 헤라클레스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원더우먼은 이렇게 탄생했다.

원더우먼은 마스턴 박사의 아내였던 두 여인의 모습도 반영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대학에 다니는 여성이 거의 없던 시대에 학사, 석사, 법학 학위를 받은 인텔리였다. 두 번째 아내 번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페미니스트 마가렛 생어의 조카로, 결혼반지 대신 원더우먼처럼 금속 팔찌를 끼고 다녔다.

■ 생김새는 핀업걸

한때 유행했던 핀업 걸(바르가 걸) <사진=pixabay>

하지만 출판사는 다른 남성 캐릭터와 차별성과 상업적인 부분을 감안해 외형적 에로틱함을 요구했다. 이는 마스턴 박사의 취향과 더해져 인기 잡지 에스콰이어의 '바르가 걸(Varga Girl)'에서 일정 부분 이미지를 차용했다.

페루 화가 알베르토 바르가스가 그린 여성 나체 그림은 이후 플레이보이 창립자 휴 해프너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이른바 '센터폴드(잡지 한가운데 양쪽으로 펼쳐지는 대형 여성 사진)'의 원형도 됐다.

■ 여성운동의 상징 VS 부정
마스턴 박사의 은퇴와 시대 변화 속에서 원더우먼의 강력한 페미니스트 이미지는 퇴색했다. 다만 여전히 어린 시절 만화를 읽으며 성장한 세대들에게는 수십년간 여성 운동의 상징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2010년대로 이어졌다. 페미 잡지의 표지모델이나 각종 행사에 원더우먼이 등장했고 2016년에는 UN으로부터 '여성 인권신장 명예대사'에 임명됐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프레드릭 베르뎀은 원더우먼을 '배트맨의 레즈비언 대응물'로 간주하는 등 아예 레즈비언으로 묘사했다. 여성 운동가 사이에서도 노출이 심한 의상과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빗발쳤다.

이런 배경 탓에 팬 사이에서도 원더우먼이 레즈비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수많은 팬 아트에도 반영됐다. 일부 팬들은 이번 영화에 치타가 나온다는 소식에 레즈비언 신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기대(?)했다.

■ 영화에서는

원더우먼 코믹스 팬아트 <사진=트위터>

2017년 첫 실사영화로 탄생한 원더우먼 1편은 실제로도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켰다. 패티 젠킨스 감독(51)은 2007년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범을 다룬 영화 '몬스터'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원더우먼 1984'를 보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폭력 대신 사랑과 진실의 힘으로 악을 누른다'는 오리지널 컨셉트는 다시 강조됐을지 모르지만 "사랑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자"는 다이애나의 호소는 미스유니버스 시상식 멘트처럼 진부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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