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고래(narwhal)는 머리 앞쪽으로 튀어나온 길쭉한 나선형 엄니 때문에 '바다의 유니콘'으로 불리는 북극의 대표적인 해양 포유류다.
몸길이 4∼5m, 몸무게 0.8∼1.6t의 외뿔고래는 수컷(혹은 일부 암컷)의 경우 나이를 먹으며 왼쪽 송곳니가 자라 윗입술을 뚫고 최대 3m까지 자라는 게 특징이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이 엄니가 유니콘의 뿔처럼 해독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일부 귀족들은 금값의 20배에 달하는 비싼 가격에 사들여 술잔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이는 이제까지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기도 했는데, 일부는 뿔이 공작새의 깃털처럼 짝짓기에 유리한 작용을 한다고 보고했다. 일부는 다른 외뿔고래와 영역 다툼을 위한 싸움에 무기로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캐나다 해양수산부가 처음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외뿔고래는 이 뾰족한 엄니를 물고기를 기절시키는 등 사냥에도 사용한다. 또 엄니에는 100만개 넘는 신경이 존재해 어두운 바다를 탐색하는 '음파탐지기'로도 사용된다.
이번에 덴마크와 캐나다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이빨에 담겨있는 '성분'이다.
연구팀은 그린란드 북서부에서 발견된 외뿔고래 엄니 10개의 탄소 및 질소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 이빨 각 층의 화학성분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각 외뿔고래의 서식지와 섭취한 먹이 등을 파악했는데, 특히 이번 분석에 사용된 뿔은 1962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50여년간의 기록을 담고 있었다.
반세기 동안 이처럼 일관된 데이터는 매우 드물며, 이 외뿔고래가 급변하는 조건에서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알리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해양포유학자 룬 디츠 교수는 "하나의 동물이 50년간 장기적인 데이터 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독특한 일"이라며 "이 데이터는 외뿔고래만이 아니라 북극 전체의 변화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외뿔고래는 1990년대까지 넙치나 극지대구와 같이 깊은 바다 속 낮은 온도에서 사는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외뿔고래는 열빙어와 같이 수면 가까이에 사는 물고기로 먹이를 바꿨다. 연구팀은 외뿔고래의 먹이가 바뀐 게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외뿔고래의 엄니에서 검출되는 메틸수은의 양도 크게 증가했다. 연구팀은 인간으로 인한 해양오염과 먹이사슬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생선을 먹을수록 체내에 더 많은 수은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북극곰이나 북극여우 등 북극의 다른 최고 포식자들도 얼음이 녹으며 기온이 올라갈 때 체내에서 더 많은 메틸수은이 검출되는 것과 일치한다. 다만 곰이나 여우는 털갈이를 통해 메틸수은을 몸밖으로 밀어내지만, 외뿔고래는 수은 분해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
캐나다 맥길대학교 생태독성학자 잔-피엘 데포쥐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해빙이 녹고 북극 어류의 분포가 바뀌는 등 북극 전역의 광범위한 변화 양상과 일치한다"고 결론내렸다.
또 "이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외뿔고래를 비롯한 북극의 동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는 것"이라며 향후 연구에 대한 목표를 밝혔다.
이 연구는 최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