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해외 고고학계 등에서는 '십계명(Ten Commandments)'이 핫이슈였다. 19세기에 가짜라고 판명된 십계명 초기 필사본을 진짜라고 주장하는 학자의 이야기가 뉴욕타임즈에 실리며 다시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 국가에서는 성서나 종교 유물 문제는 언제나 화제가 된다.

'모세의 고별사(The Valediction of Moses)'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16개 가죽 조각에 고대 히브리 문자로 "신이 모세에게 시혼이라는 왕의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했다"는 짧은 이야기가 적혀있다.

독일 포츠담대학교 '히브리어 성경과 주해' 회장인 아이단 데르쇼위츠는 이 문서가 '신명기(Book of Deuteronomy)'의 전신이라고 주장한다. 신명기는 구약성서의 첫머리에 있는 '모세의 5경' 중 마지막 책으로, 모세가 죽기 전 신의 언약과 율법을 상기시키며 고별 설교를 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신명기는 약 2700년 전에 씌어졌다.

세실 B.드밀 감독, 찰톤 헤스턴 주연 영화 '십계(1956)' <사진=영화 '십계' 포스터>

모세의 고별사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1883년이다. 예루살렘 유물상인 모세 빌헬름 샤피라는 이 문서를 독일 학자위원회에 보여줬다가 가짜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샤피라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문서를 100만 파운드(약 16억원)에 팔겠다고 제안했으나 역시 위조라고 판단한 박물관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이듬해 샤피라는 네덜란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망인은 문서를 영국 서점(Bernard Quaritch)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00년경부터 이 문서는 자취를 감췄다. 현재 손으로 쓴 필사본만 남아 있다.

데르쇼위츠는 모세의 고별사가 진짜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주장을 내놓았다. 우선 샤피라가 문서를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으며 이런 과정이 다수의 메모를 통해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는 "본인이 만든 위조품을 해독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문서가 발견된 과정이 1940년대 사해 문서가 발굴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데르쇼위츠는 "샤피라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1878년 여름 와디알 무집위의 사해 근처 동굴에서 베두인족이 발견한 고대 가죽 원고 조각에 대해 처음 들었다"며 "샤피라는 베두인족에게 적당한 금액을 주고 문서를 구입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사해문서가 발견된 경위와 흡사하며, 심지어 사해문서 발견보다 수십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밖에 문서에 등장하는 고대 히브리어를 19세기 위조꾼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샤피라가 베두인족에게 지불한 금액이 너무 적어 굳이 위조품을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샤피라를 위조범이라고 폭로하는 책도 출판됐다. <사진=아마존 홈페이지>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해외 전문매체 라이브사이언스가 학자 6명에게 진위 여부를 의뢰한 결과 전원이 위조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문자들은 공통적으로 문서가 한세기 이상 사라져 과학적 테스트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또 샤피라가 생전 위조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현재 돌아다니는 필사본에는 고대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편지같은 형식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19세기 위조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고대언어 전문가 크리스토퍼 롤스톤 교수는 "우리는 원본은 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가설과 상황만 따지고 있어 논쟁 자체가 별 의미는 없다"며 "또한 필사본에는 몇가지 결함이 발견되며, 이는 수십년 동안 현대 위조품에서 발견되는 결함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전문가 네브래스카 링컨대학교 명예교수 시드니 크로포드 역시 "원본은 19세기에 위조라고 판명됐으며, 이번 주장의 증거로 나온 것은 그마저도 필사본에 불과하다"며 데르쇼위츠의 주장을 일축했다.

일부 학자들은 진품일 가능성도 열어 뒀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마이클 랭로이스 교수는 "샤피라의 필사본은 잘못 만들어진 위조품이 분명해 보인다"며 "다만 불행하게도 원본을 본 적이 없어 기술적으로는 일부 조각이 진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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