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먹었다는 금단의 열매, 즉 선악과는 정말 사과였을까.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를 사과로 인식하게 된 걸까.
이스라엘 바일란대학교 아리 지보토프스키 교수는 선악과가 정확하게 어떤 과일인지 여전히 알 수 없으며, 사과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구약성서의 첫 장 창세기를 보면 선악과를 가리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peri'다. 이는 일반적으로 과일을 뜻하는 말이다. 지보토프스키 교수에 따르면 사과를 뜻하는 현대 히브리어 'tapuach'는 창세기는 물론 구약성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tapuach'는 성경이 씌어진 시대에는 일반적인 과일을 뜻하는 단어였는데도 말이다.
랍비들은 선악과가 무화과일 수 있다고 본다. 구약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열매를 먹은 뒤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리기 때문이다.
선악과가 밀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히브리어로 밀을 뜻하는 'chitah'는 죄를 뜻하는 'cheit'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포도 혹은 포도로 만든 와인도 간간히 등장하는 주장이다. 이밖에 유대인들의 축제인 초막절에 사용되는 유자일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대인들은 선악과를 사과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지보토프스키 교수는 "사과는 유대인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며 "유대인 예술에서도 사과는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따르면 서기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가 학자 제롬에게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지시한 일로부터 사과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 때 제롬은 히브리어 'peri'를 라틴어 'malum'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사과를 뜻하는 동시에 가운데 씨가 있고 주위를 과육이 둘러싼 일반적인 과일을 의미하는 단어다.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영문학 명예교수 로버트 아펠바움은 'malum'이라는 라틴어 단어가 '악'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인간의 첫 번째 잘못과 과일의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는 일종의 언어 유희였다는 것이다.
선악과가 사과로 굳어지게 된 데에는 글보다 그림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아펠바움 교수는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 시대 대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는 사과를 그려넣었다. 물론 유자나 살구, 석류 등으로 표현한 화가도 있다.
사과 이미지가 굳어지게 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667년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의 출판이다.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타락을 그려낸 이 걸작에서 밀턴은 금단의 열매를 지칭하기 위해 'apple'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했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도 아펠바움 교수는 의문을 제기했다. 밀턴은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한 입 먹었을 때 "겉이 흐릿하고 매우 육즙이 많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사과보다는 복숭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해석이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