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공원(1993)'에서 티라노사우루스는 달리는 지프와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펼칠 정도로 빠른 속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과학자들에 따르면 실제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길이 12m, 키 3.6m, 무게 5~7t에 달했다. 이들의 속도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연구가 이뤄진 적이 있는데, 과학자들은 공룡의 무게와 엉덩이 높이, 발자국 화석의 간격 등을 고려해 약 시속 7.2~10.8㎞로 걸어다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평범한 인간이 뛰는 정도의 수준이다.
이번에 이뤄진 새로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다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꼬리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꼬리는 걷을 때 균형을 맞추는 것은 물론 몸을 앞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힘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고생물역학을 연구하는 파샤 판 바이레흐트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걷는 동안 꼬리는 공중으로 들려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을 것"이라며 "이처럼 흔들리는 꼬리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큰 움직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고유한 진동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런 꼬리의 리듬을 '자연 주파수(natural frequency)'라고 불렀다.
따라서 연구진은 공룡의 자연 주파수를 파악하면 걸음의 빈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데 착안, 네델란드 라이덴에 있는 생물 다양성 센터에 보관된 티라노사우루스의 척추 뼈를 스캔하고 모델링해 꼬리의 생체 역학 모델을 만들었다. 이 뼈는 보관 상태가 뛰어나 인대가 붙어있었던 위치가 잘 드러나는 화석이다.
이같은 꼬리 모델로 자연 주파수를 파악한 뒤 보폭을 계산하기 위해 이미 알려진 작은 티라노사우루스의 보폭을 가져와 화석의 크기에 맞췄다. 이렇게 계산된 보폭은 1.9m였으며, 여기에 걸음의 빈도를 곱해 보행 속도를 계산해냈다.
최종적으로 나온 보행 속도는 시속 4.6㎞에 불과했다. 바이레흐트는 "인대와 척추의 회전 방식에 따라 시속 2.88~5.9㎞의 다양한 속도가 나왔지만, 전반적으로 기존 추정치보다는 느리다"고 결론내렸다. 이같은 결과는 21일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 저널에 게제됐다.
물론 이는 '달리는 속도'가 아니며 꼬리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영국 로열 베티네리 대학의 존 허친슨 교수는 과학전문 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연구는 간과된 부분도 있지만, 공룡의 이동에서 간과됐던 꼬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부분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과학자들은 공룡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달리는 속도는 뼈의 힘에 따라 제한될 것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바이레르트는 "유연한 꼬리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달리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허친슨 교수는 최대 주행 속도를 16~40㎞ 정도로 추측했다. 여전히 달리는 지프를 추격할 정도는 아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