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정확할수록 생성되는 '엔트로피(entropy)'가 커진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물리학자 나탈리아 아레스 등 연구진은 원자시계를 이용한 엔트로피 측정 결과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고 29일 '물리학 리뷰 X 저널'을 통해 발표했다.
원자시계는 원자의 진동수가 일정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만든 시계로, 1억년마다 약 1초의 오차만을 보일 정도로 현존하는 시계 중 가장 정확도가 뛰어나다. 연구진은 이를 두께가 수십 ㎚(나노미터, 10억분의 1ｍ)이고 길이가 1.5㎜인 얇은 막 위에 올려놓고 두 개의 기둥 사이에 매달았다. 그리고 시계가 똑딱거리며 바늘을 움직일 때마다 발생하는 미세한 열을 측정했다.
이는 열역학 제2 법칙에서 파생된 엔트로피를 측정하려는 의도다. 엔트로피란 고립계에 에너지가 가해지면 무질서도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지기 때문에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즉 우주는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 방향으로 이동한다.
엔트로피가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이는 시간을 되돌리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피에 크림을 섞을 수는 있지만, 거꾸로 커피와 크림을 다시 분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같다. 또 배터리로 움직이는 시계조차도 똑딱거리면서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
연구진은 시계가 정확할수록 엔트로피(시계 회로에서 발생한 열의 결과)가 커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시계가 정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방향이 선호하는(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고, 시계가 생성한 엔트로피가 많을수록 시계는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엔트로피가 적게 발생했다면 이는 시계의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를 아레스 교수는 "더 좋은 시계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로 요약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한 종류의 시계만을 연구했으며, 다른 시계에도 이런 엔트로피의 증가가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더 많은 기계장치로 이뤄진 시계의 엔트로피를 측정하는 데에는 고려할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다른 시계의 작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봤다.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의 물리학자 후안 파렌도 교수는 "시계의 정확도와 엔트로피 간의 관계가 일반적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이번 연구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의 양자물리학자 랄프 실바 교수는 "이 관계가 모든 시계에 적용된다면 향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