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23일 개막식에서 흑인 뮤지션 참가를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조직위로부터 개막식 공연 의뢰를 받은 세네갈 출신 퍼커셔니스트 라티르 사이는 차별 없는 세계인의 축제를 조직위가 망쳐놨다고 분개했다.
일본에 20년 넘게 거주 중인 세네갈 퍼커셔니스트 라티르 사이는 22일 본인 트위터를 통해 도쿄올림픽 개막식 음악 담당자로 뽑히고도 조직위 변덕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라티르 사이에 따르면 조직위 관계자는 지난 5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흑인 얼굴이 비치는 것은 대회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며 그의 출연을 취소했다. 이 관계자는 “올림픽은 모든 인종이 어우러지는 잔치인데 특정 인종을 대표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조직위는 지난해 12월 라티르 사이를 포함한 개막식 공연자들을 선발했다. 지난 4월 첫 리허설 스케줄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기밀유지 서약을 받는가 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도록 매일 체온을 잴 것을 지시했다.
라티르 사이는 “음악인들은 대부분 부정기 공연으로 돈을 번다”며 “조직위는 기밀유지를 이유로 부정기 공연도 막고 일기를 써 매일 상황을 기록하도록 했다. 부당하다고 생각됐지만 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위해 감수했다”고 말했다.
5월까지 리허설 소식이 없자 라티르 사이는 조직위 측에 일정을 문의했다. 그제야 조직위는 라티르 사이를 개막식 공연 멤버에서 제외했다고 답변했다. 라티르와 같은 아프리카 출신 뮤지션도 역시 마찬가지 통보를 받았다.
이에 대해 라티르 사이는 “1994년 일본에 처음 와 지금까지 많은 아티스트와 공연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해 해외에서 연주한 적도 있다”며 “돈 문제로 이러는 게 아니다. 납득 가능한 해명이 없어 실망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노예가 많은 작은 섬에서 태어난 저는 올림픽 무대에서 차별 철폐와 공존, 평화를 연주하고 싶었다”며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도쿄올림픽 조직위를 향한 비난이 빗발쳤다. 조직위는 이미 총감독의 홀로코스트 희화화와 음악 담당자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뭇매를 맞은 터다. 한 시민은 “개막식에 흑인 음악가가 나오면 곤란하다는 조직위가 성화 최종 점화자 일본계 흑인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뽑았더라”고 비꼬았다.
이번 논란에 대해 조직위는 “아프리카 남성이 개막식에 출연하면 다른 국적 또는 인종 사람들도 공연에 대거 포함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애매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