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냄새를 맡은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각의 색상 왜곡을 경험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리버풀존무어스대학교 연구팀은 11일 발표한 실험 보고서에서 인간의 시각은 후각의 영향을 받아 원래 색깔을 잘못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까지 일깨우는 공감각(synesthesia)과 연관된 이번 실험에 학계 관심이 쏠렸다.
연구팀은 인간의 여러 감각이 갖는 상호 연관성을 알아보는 실험에서 우연한 사실을 발견했다. 일부 색상이 미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지만, 의외로 시각과 후각의 관계가 드러난 실험은 적었다.
실험에 참가한 남녀 피실험자 24명은 각각 화면이 설치된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 연구팀은 피실험자가 입실한 후 5분에 걸쳐 향기를 방출했다. 향은 체리와 페퍼민트, 레몬, 커피, 캐러멜, 무취 중에서 무작위로 골랐다. 피실험자가 바뀔 때마다 공기청정기를 가동해 직전 냄새를 말끔히 없앴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에게 향기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았다. 피실험자들은 화면에 표시되는 색상을 슬라이더로 조작해 완전한 회색으로 조정하라는 지시만 받았다.
실험 관계자는 "서로 다른 향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회색과는 거리가 먼 색을 조정했다"며 "다양한 향은 아무래도 색상에 대한 사람의 시각에 영향을 주는 듯하다"고 전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피실험자들은 대체로 커피향을 맡을 때 회색을 적갈색기가 강하게 표현했다. 캐러멜 냄새를 맡은 이들이 조정한 회색은 노란기가 강했다. 종류와 상관없이 일단 향이 퍼지면 사람들은 회색을 평소보다 따듯한 색으로 조정했다. 다만 페퍼민트 향은 무취와 마찬가지로 색의 왜곡을 일으키지 않았다.
실험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냄새가 사람의 색 인식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해준다"며 "이런 사실은 시각이나 후각과 같은 감각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지각을 좌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인간의 뇌는 주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항상 눈과 귀로 들어오는 정보를 정리한다"며 "실시간으로 풍겨오는 냄새가 무심코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공감각 이론에 입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