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고대도시 티칼의 유적에서 테오티우아칸과 충돌한 흔적이 발견됐다. 학계는 마야문명의 융성을 누린 티칸이 막강한 테오티우아칸과 대립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에 주목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UTA) 역사학자 에드윈 로만 라미레즈 박사 연구팀은 8일 국제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낸 보고서에서 약 1700년 전 만들어진 티칼 제단의 분석 결과를 전했다.
티칼은 과거 마야문명의 중심 도시로 번성했다. 3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티칼의 제단 사방에는 화려한 깃털 장식을 단 의문의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에드윈 박사는 "기묘한 인물은 멕시코 유적에서 볼 수 있는 폭풍의 신과 많이 닮았다"며 "아무래도 이를 그려 넣은 인물은 티칼 출신이 아니라 당시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한 테오티우아칸 장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해당 제단이 마야 고대도시 티칼과 테오티우아칸의 대립을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과테말라에 자리한 티칼 유적은 4~9세기 무렵 번영한 마야문명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런 티칼의 세력이 처음부터 큰 것은 아니었다. 티칼은 기원전 850년경 태동했고 오랫동안 작은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기원전 100년에 이르러 힘을 기른 티칼은 마야문명의 정치·경제 중심지로 떠올랐다.

에드윈 박사는 "티칼에서 1000㎞ 떨어진 현재의 멕시코에는 마야문명에 영향을 준 테오티우아칸이라는 막강한 고대도시가 존재했다"며 "당시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대단한 영화를 자랑했고, 처음에는 티칼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티칼과 테오티우아칸은 제단이 만들어진 무렵 우호관계에서 교류했을 것"이라며 "가끔 교역을 하는 사이였다가 힘을 기르는 티칼이 거슬린 테오티우아칸은 이윽고 대립했다"고 덧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은 378년 티칼의 왕을 폐하는 등 정치에 간섭했다. 이번 제단이 세워진 시대는 공교롭게도 티칼의 격동기와 일치한다. 빨간색과 검은색, 노란색으로로 채색된 제단에는 아몬드 모양의 눈을 하고 머리에 깃털 장식을 단 인물이 그려졌는데,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숭배한 폭풍의 신과 실제로 닮았다.

에드윈 박사는 "두 세력의 갈등을 암시하는 것은 폭풍의 신을 닮은 초상만이 아니다. 제단 내부에서 앉은 자세로 매장된 아이의 시신이 나왔는데, 이런 매장법은 티칼에 없었지만 테오티우아칸에서는 일반적"이라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제단에서 나온 흑요석 창날과 매장된 성인의 유골 역시 테오티우아칸이 티칼의 정치에 개입한 증거로 봤다. 창날의 소재나 형태가 테오티우아칸 양식이기 때문이다.
에드윈 박사는 "이런 요소들은 티칼 사람들의 복잡한 역사를 전해주는 듯하다. 티칼은 강력한 테오티우아칸의 견제에 시달리면서도 멸망하지 않았고 몇 세기에 걸쳐 강력한 왕국으로 변모했다"며 "정작 테오티우아칸은 티칼보다 250년 먼저 붕괴했다"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