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즐겨 마신 와인이 납 같은 중금속 중독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베토벤의 난청은 중금속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는 이미 나왔지만 와인과 연관성이 드러난 전례는 없다.
미국 보스턴소아병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6일 국제 학술지 클리니컬 케미스트리(Clinical Chemistry)에 낸 조사 보고서에서 이같이 전했다.
연구팀은 진품으로 인정된 베토벤 모발의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고농도의 납 외에 비소, 수은 등 중금속이 검출됐다. 베토벤은 난청을 비롯해 B형 간염 등 일생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는데, 이런 중금속 중독이 그의 몸을 갉아먹은 것으로 연구팀은 추측했다.
조사를 이끈 보스턴소아병원 네이더 리파이 전문의는 "이번에 분석한 베토벤 모발은 두 가닥으로, 한쪽에서는 1g 당 258㎍(마이크로그램), 다른 쪽은 380㎍의 납이 나왔다"며 "이는 정상 납 잔류치의 60~100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납뿐만 아니라 수은과 비소와 역시 정상 범위를 각각 4배와 13배 넘었다"며 "베토벤이 고농도 납중독으로 난청에 걸렸다고 본 기존 가설은 타당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운명'과 '비창' '월광' 등 수많은 명곡을 쓴 베토벤은 20대에 청력이 악화되기 시작해 40대 후반에는 아예 귀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만성 복통이나 설사에 시달렸고, 간 문제로 추측되는 심한 황달을 겪기도 했다.
네이더 전문의는 "열거한 증상의 원인 중 하나는 납 중독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는 베토벤이 즐긴 와인이나 생선이 원인으로 생각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기의 와인에는 보존료나 감미료로 아세트산납이 과다 사용됐고, 유리병에도 미량의 납이 포함됐다"며 "비소나 수은으로 오염된 다뉴브강에서 낚은 물고기를 먹은 것도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베토벤의 모발이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연구에서는 베토벤이 숨지기 직전 B형 간염에 걸렸고, 이것이 죽음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네이더 전문의는 "베토벤 시절에는 유명 인사가 죽으면 머리카락이나 손톱 일부를 남기곤 했다"며 "당시 이런 풍습 덕에 오늘날 후손들이 위인의 생활상이나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