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사람처럼 진화해 문명을 창조했을까.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 상상은 과학계가 검증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고대 지구의 하늘과 지상, 바다를 호령한 공룡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6600만 년 전 갑자기 자취를 감췄고, 이들이 멸종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인류가 현재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룡을 포함한 고대 포식자의 멸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어떻게든 살아남은 포유류들은 지속적으로 번성했고, 그 속에는 우리의 먼 조상도 포함돼 있다.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룡도 인류와 마찬가지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다고 보는 과학자가 있는가 하면, 사람처럼 발달된 문명을 갖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하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인물은 영국 바스대학교 고생물학자 닉 롱리치 교수와 2019년 세상을 떠난 캐나다 고생물학자 데일 러셀 박사다. 롱리치 교수는 공룡이 소행성 충돌 등 유력한 멸종 시나리오를 피했더라도 사람처럼 진화해 문명을 발달시키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데일 러셀은 죽기 전까지 공룡이 진화해 세상을 지배한 세상을 상상했다.
닉 롱리치 교수가 공룡의 문명을 불가능에 가깝게 보는 이유는 뇌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공룡은 이를 잘 활용해 생태계의 정점에 올랐지만 뇌는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공룡의 뇌가 그다지 크게 진화하지 않은 사실에서 드러난다.
교수는 "공룡이 인간처럼 진화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는 동물의 생태가 그 진화의 방향성을 제약하기 때문"이라며 "공룡은 뇌를 발달시키지 않아도 강력한 신체 능력만으로 생존이 가능했다. 때문에 지금껏 살았더라도 문명까지 꽃피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쥐라기 후기 출현한 아파토사우루스 등 용각류는 체중 약 20t, 몸길이 약 30m의 거구로 진화했다. 다만 이 공룡은 몸집이 비슷한 브라키오사우루스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뇌를 가졌다.
롱리치 교수는 "생물의 진화를 보면 출발점이 결과를 어느 정도 정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몸집에 비해 뇌가 작은 공룡이 우리 정도의 문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생물학적 출발점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공룡들은 가장 큰 용각류는 물론 육식인 수각류 등 대부분의 종이 몸집 대비 뇌가 작았다. 백악기 육식공룡 메갈로사우루스와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 티라노사우루스, 쥐라기 육식공룡 알로사우루스 등은 체중이 수 t에 달하는 거대한 수각류인데, 뇌는 이전 용각류들에 비해 약간 커졌지만 몸집에 비하면 여전히 작았다.
화석을 토대로 진행된 지금까지 분석 결과, 체중이 최대 7t인 티라노사우루스의 뇌는 겨우 400g이다. 인간은 몸무게가 1t도 안 되지만 뇌 무게는 평균 1.3kg이나 된다. 거대한 공룡에 비하면 인간의 몸집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지속적으로 뇌의 크기를 키우면서 결국은 모든 동물을 지배했고 문명을 창조했다.
학자들은 공룡이 문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처럼 인간이 현재 상태로 진화한 것 역시 필연은 아니라고 본다. 영장류는 아프리카에서 700만 년에 걸쳐 큰 뇌를 가진 유인원으로 진화했고, 이윽고 현생 인류가 태어났다. 하지만 다른 장소의 영장류는 전혀 다른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일례로 3500만 년 전 남미에 도달한 원숭이는 그저 원숭이로 다양화됐을 뿐이다.
롱리치 교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핵무기를 만들 정도로 인류가 천재적인 뇌를 갖게 된 구체적 경위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며 "다만 모든 학문에는 예외가 있어서, 공룡이 살아남아 현재 우리 같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거라고 100% 장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지를 뒀다.
그는 "공룡이 없어져도 인간이 지금처럼 진화하기까지 숱한 행운이 따른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며 "이런 행운이 공룡에게도 주어졌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다른 곳이 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