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학 분야의 선구자 일리야 메치니코프가 일찍이 주목한 장내 세균이 사람의 각종 질병을 낫게 하는 것은 물론 뇌를 젊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면역 기능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나 학계 관심이 집중됐다.

아일랜드 국립 코크대학교 연구팀은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발표한 논문에서 어린 쥐의 분변을 나이든 쥐에 이식한 결과 면역력이 회복되고 뇌 인지기능까지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밝혔다.

정식 명칭이 ‘분변 미생물군 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인 분변이식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환자에 이식하는 치료법이다. 암부터 각종 감염증, 알코올의존증, 심지어 자폐스펙트럼 장애에도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메치니코프의 노년학(gerontology)에 입각해 분변이식의 효능을 살펴보던 코크대학교 연구팀은 노화가 전신에 생기는 염증의 증가와 관련됐다고 생각했다. 뇌의 경우 면역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글리아(microglia), 즉 소교세포가 나이가 들며 줄어 각종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

치매 노인을 다룬 영화 '더 파더' 중에서. 치매는 노화 등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각종 질병이 야기한다. <사진=영화 '더 파더' 스틸>

따라서 연구팀은 장내 세균을 늘려주는 식사를 하면 나이든 쥐의 인지기능 쇠약을 억제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다만 식사를 바꾸는 것보다는 직접 배설물 속 세균을 전달하기 위해 분변이식을 택했다.

연구팀이 어린 쥐의 똥을 나이든 쥐에 이식한 결과 노화로 떨어진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심지어 노화로 저하됐던 면역 기능까지 강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실험 관계자는 “어린 쥐의 분변은 늙은 쥐의 몸에 들어가 염증 수를 줄여줬다”며 “이로 인해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내 해마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이 어린 쥐와 비슷하게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글리아는 유산균 관련 학문에 정통한 메치니코프가 이미 현미경으로 관찰한 바 있다. 오랜 세월 연구를 거듭한 끝에 학자들은 마이크로글리아의 활동이 장내 세균총에 의해 조절되는 사실도 밝혀냈다.

장내 세균총은 뇌의 마이크로글리아 활동을 조절한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이번 실험 결과에 따라 장내 세균이 노화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어디까지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사람에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향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험 관계자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장내 세균을 대량으로 늘려주는 식사나 세균을 이용한 치료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메치니코프는 장내 세균이 사람의 생로병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 선구자적 학자다. 50세가 되던 1895년 생물의 노화에 큰 궁금증을 느낀 메치니코프는 나이가 들면 왜 인지기능이나 면역이 떨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메치니코프의 이런 노력은 노년학 탄생의 기초가 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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