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충이 개체 간 RNA(리보핵산)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공유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충이 기억을 나누기 위해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RNA를 동원한다는 점에 학계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연구팀은 몸길이 1㎜ 정도의 다세포 생물 선충이 다음 세대로 기억을 이어가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기획했다. 이 실험은 섭취할 경우 병이 날 수 있는 음식물의 위험성을 동료나 다음 세대에 알릴 수 있다면 종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연구팀은 다세포 생물 최초로 모든 게놈 배열이 해독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과 녹농균(Pseudomonas)을 동원해 선충의 기억 공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인했다. 녹농균은 동물의 상처 등을 통해 감염되며 심하면 패혈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선충에게는 주로 식중독을 유발한다.

녹농균을 섭취한 예쁜꼬마선충을 무리에 노출시킨 뒤 변화를 관찰한 연구팀은 선충들이 서로의 RNA를 교환해 기억을 공유한다고 결론 내렸다. 실험 관계자는 “지나가던 동료가 녹농균에 파괴된 선충 몸에서 흘러나온 RNA를 섭취하면 동료들에게도 기억이 전해져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을 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확대한 예쁜꼬마선충 <사진=OpenWorm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A brief introduction to C. elegans' 캡처>

선충 몸으로 들어간 녹농균은 P11 등 장내 RNA를 흡수했다. RNA는 세포의 핵이나 세포질 안에 존재하며 DNA와 함께 유전이나 단백질 합성에 관여한다. 실험 관계자는 “P11은 선충의 maco-1이라는 유전자에 결합했다”며 “maco-1은 감각인식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결합에 의해 선충은 녹농균이 위험하다는 것을 학습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선충의 기억 전달 메커니즘 덕에 부모와 자식 관계의 경우 최소 4세대가 녹농균을 피한 것으로 확인했다. 또한 혈연관계가 없는 동료들에게서도 이 같은 활동을 관찰했다. 즉 RNA의 기억이 부모로부터 자식뿐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동료에게도 전달된 셈이다.

실험 관계자는 “녹농균이 위험하다는 것을 학습한 선충의 신체 일부는 물론 이 선충이 헤엄치던 배지(미생물 실험을 위한 배양물)를 다른 선충에게 먹이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몰랐던 선충들이 녹농균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개중에는 동료의 RNA를 섭취해도 학습하지 못하는 선충도 있었다”며 “이것은 RNA 이외에도 기억 전달에 관여하는 물질이 추가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예쁜꼬마선충의 장내에 침투한 녹농균으로 인해 기억이 공유되는 과정 <사진=프린스턴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그 추가 물질 중 하나로 레트로트랜스포존(retrotransposon)의 일종인 ‘Cer1’을 꼽았다. 레트로트랜스포존은 DNA의 전사체인 RNA를 매개체로 해 유전체 내에서 이동하는 전이인자다.

실험 관계자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어떤 유전자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바이러스와 같은 입자를 만들어 자신의 체내뿐 아니라 다른 개체에 기억을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Cer1이 없는 선충은 녹농균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담긴 RNA를 줘도 여전히 녹농균을 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동물심리학자 제임스 V.맥코넬이 플라나리아 실험을 통해 주장한 기억 전달 메커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다. 맥코넬은 플라나리아가 동료를 잡아먹어 그 기억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다가 학계의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이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현재 환경스트레스 등에 따라 유전자 스위치가 바뀌고 심지어 몇 세대에 걸쳐 기억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실험 결과는 선충은 물론 초파리나 쥐 등 덩치가 보다 큰 동물에서도 확인된 만큼 인간 역시 같은 방법으로 기억을 전달할 수도 있다”며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가설로,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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