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소설을 영화화한 '엑소시스트'(1973)에 얽힌 오래된 비밀 하나가 풀렸다. 이야기의 실제 인물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미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로 밝혀져 영화는 물론 과학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렸다.

해외 오컬트 및 과학 격주간지 스켑티컬 인콰이어러(Skeptical Inquirer)는 최신호를 통해 롤랜드 도우 또는 윌리엄 만하임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영화 '엑소시스트'의 실제 모델 로널드 훈켈러가 실은 NASA 기술자였다고 전했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조지타운대학교 재학 시절 1949년 메릴랜드 엑소시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악마에 홀린 14세 소년 훈켈러를 구하기 위해 장기간 구마의식이 벌어진 극적인 사연에 심취한 그는 이를 소설로 집필했다. 윌리엄 프리드킨(87)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걸작 호러 '엑소시스트'를 연출했다. 

사람들은 영화가 차용한 실제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 메릴랜드 악마 빙의 사건의 희생자 훈켈러의 사연은 크게 유명해졌지만 부모는 소년의 삶을 위해 본명을 비밀에 부쳤다. 엑소시즘에 참여한 예수회 사제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윌리엄 프리드킨의 걸작 호러 '엑소시스트' <사진=영화 '엑소시스트' 포스터>

끝내 신원이 밝혀지지 않던 훈켈러는 지난해 메릴랜드 자택에서 뇌졸중 후유증과 싸우다 숨졌다. 86회 생일을 한 달쯤 남긴 시점이었는데, 훈켈러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영화 '엑소시스트'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훈켈러는 악마로부터 벗어난 뒤 대학에 진학했고 NASA에 취업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겪은 소년이 우주과학 분야를 업으로 삼은 셈이다. NASA 엔지니어로 무려 40년간 일하면서 우수한 인재로 좋은 평가도 받았다. 주로 우주왕복선의 내열 패널을 제작하는 특수 제작 파트를 전담했다. 

NASA 동료들은 "훈켈러가 고안한 기술들은 1960년대 미국의 아폴로계획에 크게 공헌했다"며 "훈켈러 같은 엔지니어 덕에 미국은 1969년 달에 우주인을 보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NASA 동료들도 훈켈러가 그 유명한 '엑소시스트'의 실제 모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훈켈러가 워낙 비밀유지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가 유일하게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은 29년간 함께 산 여성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은 "훈켈러는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동료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챌까 밤낮으로 걱정했다"고 돌아봤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모티브가 된 1949년 메릴랜드 악마 빙의사건의 실제 주인공이 NASA 엔지니어로 일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사진=영화 '엑소시스트' 스틸>

2001년 NASA에서 퇴직한 훈켈러는 여성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 노력했다. 다만 핼러윈데이 때면 일부러 집을 비웠다. 누군가 사탕을 받으러 왔다가 정체가 탄로 날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여성은 "세상에 없는 존재로 살다 간 훈켈러가 안쓰럽다"고 말했다.

1935년 6월 1일 메릴랜드 코티지 시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훈켈러는 14세가 되던 1949년 침실 벽을 때리고 긁는 소리에 시달렸다. 물건이 방안을 날고 침대가 절로 움직이며 멀쩡한 테이블이 뒤집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훈켈러 근처 벽에 걸렸던 예수 초상화가 흔들리는 섬찟한 상황을 목격한 부모는 그제야 사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훈켈러를 관찰한 사제는 대학교수까지 동원해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심리테스트 결과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사제는 두 달 넘게 30여 차례 엑소시즘을 벌였다. 훈켈러는 1949년 3월 21일 불타는 검을 쥔 대천사 미카엘을 본 직후 악마로부터 해방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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