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지능과 운동능력으로 수중 최강의 포식자로 군림하는 범고래가 사냥감인 혹등고래를 구하는 희귀한 상황이 포착됐다.
호주 고래 보호단체 웨일워치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WWA)는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범고래 무리가 밧줄에 몸이 얽혀 꼼짝 못 하는 혹등고래를 구하는 동영상을 선보였다.
약 1분짜리 영상은 지난 10일 오전 호주 남서부 브레머만을 항해하던 WWWA 조사선이 직접 촬영했다. WWWA 조사원들은 선상에서 7m가량 길이의 혹등고래가 밧줄에 엉켜 바다 표면까지 떠오른 것을 확인했다.
이후 조사원들은 믿기 힘든 광경을 마주했다. 인근을 헤엄치던 범고래 무리가 오도 가도 못 하는 혹등고래에 빠르게 접근, 밧줄을 꼬리에서 빼냈다. 심지어 밧줄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버렸다.
WWWA 관계자는 "남반구는 지금 한창 여름으로, 원래대로라면 혹등고래는 남극에서 먹이활동을 해야 한다"며 "꼬리지느러미를 들어 올렸을 때 어업용 로프가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이유가 설명됐다"고 전했다.
이어 "인간의 욕심으로 한여름 호주까지 떠내려온 혹등고래의 건강 상태는 한눈에도 나빠 보였다"며 "순간 나타난 범고래 무리에게 좋은 먹잇감이었을 텐데, 어쩐 일인지 범고래들은 도움을 주고 그냥 사라졌다"고 놀라워했다.
무리를 지은 효율적 사냥 습성으로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자리하는 범고래는 혹등고래의 천적이다. 혹등고래의 덩치가 더 크지만 범고래들은 그룹에서 낙오한 몸집이 작은 개체나 새끼를 놓치지 않고 사냥한다.
일단 WWWA는 지금까지의 경험 상 조사선의 영향으로 범고래들이 돌아갔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WWWA 관계자는 "천적관계인 범고래가 의도적으로 혹등고래의 로프를 풀어줬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영리한 범고래들이 혹등고래 꼬리의 밧줄이 풀린 것을 확인한 뒤 떠난 점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WWWA에 따르면 범고래들이 사라진 후 혹등고래는 한동안 배 근처를 돌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살펴본 결과 꼬리 부분의 상처가 확인됐지만 다행히 밧줄은 다 풀려나간 뒤였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