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겨울잠에서 힌트를 얻은 우주비행사 인공동면 시스템이 실제 우주 탐사에 응용될 전망이다.
유럽우주국(ESA)은 최근 연구 논문 '인간과 로봇에 의한 탐사(Human and Robotic Exploration)'를 통해 우주비행사에 최적화된 새 인공동면 기술을 소개했다.
화성 탐사에 초점을 맞춘 이 시스템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인공동면과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동면과 달리 곰의 겨울잠에서 힌트를 얻은 점이 특징이다.
우주비행사의 인공동면은 부여된 임무 전체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고 우주비행사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손꼽힌다. ESA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화성까지 왕복하기 위해서는 약 2년 치 식량과 물을 준비해야 한다"며 "우주비행사 1인당 하루에 약 30㎏의 물자가 필요하며 방사선이나 정신적, 생리적 과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동면의 핵심은 생명체의 대사율을 안전한 선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일종의 가사상태로 긴 시간을 버티는 것은 곰 등 동물의 겨울잠에서 확인된 효율적 생존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했다.
동물은 추위와 식량·물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겨울잠을 잔다. 심박수나 호흡 등 생명기능을 평소의 몇 분의 1로 줄인다. 체온은 주위 온도 근처까지 내려간다.
ESA 관계자는 "우주 인공동면의 가장 좋은 표본으로 곰을 꼽는 이유는 체격이 우리와 비슷하고 체온을 몇 도 밖에 낮추지 않기 때문"이라며 "인공동면의 기준으로 삼기에 여러모로 안전한 것이 곰의 겨울잠"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주비행사가 곰과 마찬가지로 체지방을 늘린 상태에서 인공동면을 하더라도 문제점은 있다"며 "사람은 6개월 누워 있으면 근육량이 줄고 뼈 강도가 약해지며 심부전 위험이 높아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곰과 반달곰은 겨울잠이 들면 최소 6개월간 먹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봄이 되면 곰은 굴을 건강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근육량 감소는 미미하며, 심지어 20일 정도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ESA는 곰의 겨울잠이 근육과 뼈의 폐용성 위축(근섬유 등이 위축되는 현상)을 막고 조직 손상을 방지하는 데 주목했다. 포유류 동물 중 일부 종은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를 낮게 유지해 긴 겨울잠을 잔다. ESA는 사람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에너지 대사를 강하게 제어하는 점을 인공동면 시스템에 응용했다.
ESA 관계자는 "여성과 남성호르몬은 각각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이 다르다"며 "호르몬 특성상 인간의 우주 인공동면 테스트는 주로 여성이 하게 될 가능성이 현재 높다"고 언급했다.
개발 중인 인공동면 시스템은 수면에 적당한 조명과 소음, 습도, 10℃ 이하의 저온을 유지하는 소프트 쉘 포드(soft-shell pods) 형태다. 우주비행사는 과열을 막는 특수복을 착용하고 잠들며,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자세나 체온, 심박수가 실시간 보고된다. 소프트 쉘 포드는 방사선 차폐물로 둘러 인공동면에 든 비행사를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한다.
비행사가 잠든 사이 긴급 대응은 인공지능(AI)이 대신한다. AI는 우주선의 소비 전력을 감시하고 자율적 운용을 맡아 비행사가 깨어날 때까지 우주선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한다.
사실 인공동면의 역사는 오래됐다.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약 40년 전인 1980년대다. 이 무렵 병원들은 장시간 복잡한 수술을 위해 저체온을 유도, 환자의 신진대사를 억제하는 동면술을 사용했다.
ESA는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비행사의 대사율을 평소의 25%까지 내리면 물자의 양이나 필요한 공간이 극히 줄어 장기간 탐사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특히 인공동면을 통해 좁은 우주선에서 느낄 수 있는 지루함과 고독감, 공격성 수준을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