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사정으로 와이파이(Wi-Fi)를 사용할 수 없는 도시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그린뱅크 주민들은 무려 64년 동안이나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져 자발적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 중이다. 

그린뱅크 천문대 과학센터는 1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와이파이 등 첨단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지내는 200여 명의 지역 주민들 사연을 전했다.

현재 주민 182명이 거주하는 그린뱅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파망원경 ‘로버트 버드 그린뱅크 망원경(Robert C. Byrd Green Bank Telescope, GBT)’이 자리한다. 지역을 상징하는 GBT 주변에도 각종 우주 관측 장비가 들어서 있다.

직경이 무려 60m나 되는 로버트 버드 전파 망원경은 간섭을 일으키는 전파 발신기에 취약하다.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와이파이는 물론 그 흔한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 심지어 전자레인지도 쓰지 않는다.

그린뱅크 천문센터를 상징하는 로버트 버드 그린뱅크 전파망원경 <사진=National Geographic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The Largest Fully Steerable Telescope in the World | National Geographic' 캡처>

그린뱅크에 천문대가 들어선 역사는 아주 길다. 1957년 그린뱅크 천문대 건설이 시작됐고 이듬해 미국 정부에 의해 마을은 국가 지정 전파 통제 지역으로 묶였다.

그린뱅크 천문대 과학센터 관계자는 “1958년 미국 정부는 당시만 해도 기밀이던 전파망원경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을 포함한 드넓은 지역을 국가 재정 전파규제지역(NRQZ)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NRQZ는 전파 송신이 법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전자레인지마저 사용할 수 없어 주민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며 “현재 남은 사람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전파망원경을 보유한 자부심으로 살아간다”고 덧붙였다.

현대인에게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인 와이파이가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잘 지낸다. 전파가 만들어낸 다양한 기술과 온라인에 묶여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간과했던 것들을 새삼 느끼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만끽하고 있다.

직경 60m의 로버트 버드 그린뱅크 망원경(아래)과 주변에 들어서 있는 각종 천문 관측 장비들 <사진=National Geographic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The Largest Fully Steerable Telescope in the World | National Geographic' 캡처>

지역 주민은 “이런 마을도 있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은 와이파이 없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고, 얼마나 우리 삶이 디지털 세계에 잠식돼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금도 스스럼없이 옆집 문을 두드리고 ‘설탕을 조금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며 “SNS에 올라온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매일 실감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린뱅크 망원경은 별의 형성부터 빅뱅의 흔적까지 우주의 중요한 현상들을 관찰해 왔다. 2019년 약 4600광년 떨어진 태양 질량의 2.17배 중성자별을 확인했고 지난해 4월 발표된 금성의 하루 길이 관측에도 활용되는 등 우주 관측 전진기지로 활약하고 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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