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는 과정에 맹독성 물질인 시안화물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공개한 논문에서 청산가리로 대표되는 시안화물이 40억 년 전 원시 지구의 생명체 탄생과 진화를 도왔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연구소는 그간 학계에 제기된 원시 지구의 생명체 기원에 대한 학설들 중 원시 수프 이론에 주목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요구되는 생화학적 프로세스에 어쩌면 독극물이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원시 수프 이론은 지구에 여러 분자가 뒤섞인 바다가 탄생, 분자가 상호 작용하고 여기서 복잡한 화합물이 만들어져 결국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는 학설이다.
이 이론이 실제 성립하려면 환원적 구연산회로, 즉 일부 세균이 이산화탄소와 물로 유기화합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생화학 반응을 재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로부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화합물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현대 생명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스크립스연구소 라마나라얀 크리슈나무르티 연구원은 “이런 생화학반응은 원시 수프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라며 “다만 초기 지구가 환원적 구연산 회로가 작동할 환경이라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당시 지구에는 산소는 물론 단백질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시 지구의 유기화합물이 만들어진 과정에는 아마 금속이 개입, 생화학적 프로세스를 촉진했을 것”이라며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초고온 같은 극한의 상태가 필요한데 원시 지구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연구소는 금속 대신 시안화물을 사용한 실험에 나섰다. 시안화물은 초기 지구에 존재한 물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우연히도 환원적 구연산 회로와 같은 과정을 거쳐, 요구하는 분자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재현할 수 있었다.
크리슈나무르티 연구원은 “원시 바다에 충분한 시안화물이 있었다면 지금은 맹독으로 알려진 이 물질의 힘으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했을 수도 있다”며 “지구 이외의 행성에서도 같은 과정으로 생명이 진화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그는 “생명체가 호흡하는 데 필요한 산소는 한때 맹독이었다는 학설이 있다”며 “청산가리(칼륨 시안화물)로 대표되는 시안화물은 극소량만으로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생명을 구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