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진화 속도는 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최대 4배 빨랐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호주국립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낸 논문에서 세계 야생동물의 유전자 변이를 장기적으로 대규모 분석,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동물의 진화를 촉진하는 연료, 즉 유전자가 지금까지 학설보다 훨씬 풍부할 것으로 추측했다. 뭣보다 현재 지구는 기후변화(온난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생물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진화하는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수정할 필요성도 느꼈다.

이에 연구팀은 총 19개 야생동물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했다. 여기에는 호주 현지 새인 요정굴뚝새(Malurus cyaneus)와 탄자니아 점박이하이에나(Crocuta crocuta), 아프리카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수단황금참새(Melospiza melodia), 스코틀랜드의 붉은사슴(Cervus elaphus)이 포함됐다.

야생동물 진화 속도 조사에 동원된 수단황금참새. '노래참새'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사진=pixabay>

조사에 동원된 것은 생물학자들이 모은 대규모 데이터였다. 각 동물을 추적 조사한 데이터는 최단 11년, 최장 63년, 평균 30년에 달했다. 무려 260만 시간에 이르는 야생동물들의 추적 데이터로 진화 속도를 들여다본 시도는 세계 최초다.

동물의 탄생과 죽음, 교배 등 모든 자료에 담긴 유전정보를 분석한 연구팀은 진화생물학의 기초를 닦은 찰스 다윈의 생각을 대폭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부 동물은 불과 몇 년 만에 진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음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기 때문이다.

생물 진화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다윈의 이론이 깨진 건 오래전 일이다. 학계는 왕벚나무에 치명적인 모시나방을 통해 이 사실을 파악했다. 산업혁명 이전 영국에 서식한 이 나방은 대부분 흰색이었다. 공장에서 배출되는 그을음으로 나무와 건물이 검게 더러워지자 나방의 색도 검게 변했다. 그 유명한 '공업암화'다.

생물의 진화 속도에는 유전자가 개입한다.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다양해질 경우 대개 진화 속도는 빨라진다. 불리한 특징은 사라지지만 유리한 특징은 확립돼 가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의 진화 속도를 파악하는 것은 종의 보존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이번 조사는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없어 생물들의 진화 속도가 온난화 때문에 가속화됐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면서도 "적어도 진화의 연료가 상상 이상으로 풍부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물들은 온난화가 진행되는 야생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 야생동물이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를 우리가 알아내지 못하면 그대로라도 살아남을 종과 도움이 없으면 죽을 종을 예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학계는 지구온난화가 가속하면 생물 적응이나 진화가 늦어질 것으로 우려해 왔다. 진화 속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조사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입장이다.

연구팀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생물 적응을 생각하는 데 진화는 상상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라고 전했다. 이번 조사 방법으로 집단 내 특질에 대해 자연 도태로 야기되는 현재 진화의 잠재적 속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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