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때 만들어진 동전에 초신성 폭발이 담겼다는 흥미로운 학설이 발표됐다.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제국은 혜성의 지구 근접이나 초신성 폭발 등을 신학적 교의에 따라 철저하게 배척했다.
미로슬라브 필리포비치 웨스턴시드니대학교 교수 등이 참가한 다국적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European Journal of Science and Theology’에 낸 논문에서 동로마 제국 기술자가 주조한 동전 속 별이 ‘SN1054(초신성 1054)’라고 주장했다.
이 동전은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9세(모노마호스) 재위 시절 만들어졌다. 정확한 명칭은 ‘콘스탄티노스 9세 모노마호스 IV(Constantine IX Monomachos Class IV) 동전’이다.
연구팀이 조사한 동전들은 콘스탄티노스 9세 시대 주조된 다른 동전에 없는 거대한 별 2개가 새겨졌다. 이 동전은 콘스탄티노스 9세의 얼굴을 양각했는데, 양옆으로 별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황제의 얼굴이 태양이며, 두 별은 각각 금성과 ‘SN1054’라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콘스탄티노스 9세는 1042년에서 1055년까지 동로마 제국을 다스렸다. 초신성 ‘SN1054’는 기원전 5500년, 현재의 황소자리 게 성운 자리에 있던 항성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생성됐다. 당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섬광은 무려 6500광년을 이동, 1054년 7월 4일 지구 각지에서 관측됐다.
초신성의 밝기는 -6등성으로 추측된다. 폭발 당시 워낙 밝은 빛을 내 육안으로도 밤하늘에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있다. 아랍 역사서를 보면, 섬광은 밤하늘의 금성과 비슷했다. 동전에 별이 두 개인 이유는 섬광의 크기나 빛이 금성과 대등했음을 보여준다. 섬광은 23일간 낮에도 보였고 무려 653일간 밤하늘을 밝혔다.
송나라 역사서 송사에는 “지화 원년 5월 기축일(7월 4일), 천관(황소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수 척 떨어진 곳에 (객성이)나왔으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밖에도 송사 여러 군데에 “밤에도 환해 불빛 없이 글을 읽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일본 헤이안 시대 시인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펴낸 메이게츠키에도 ‘SN1054’ 이야기가 나온다. 음양사는 객성이 목성에 비할 정도로 크다고 언급했다.
유독 기독교 국가 역사서나 기록에 ‘SN1054’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성서에 기반한 기독교 국가들은 별이 폭발하는 등 우주에 관한 과학적 견해를 비방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별이 가득한 천공의 변화를 논하는 것 자체를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조사 관계자는 “콘스탄티노스 9세의 얼굴을 새긴 동전 기술자 중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라며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직공은 밤하늘을 밝힌 천체를 어떻게든 동전에 새겼고, 비교적 잘 보존된 몇 개가 전해져 후대에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별이 들어간 동전은 1054년 여름부터 1055년 봄에 걸쳐 주조된 것”이라며 “총 36개 동전에 새긴 별은 각기 미묘하게 크기가 다르다. 별의 크기를 바꿈으로써, 서서히 어두워진 초신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인이 봤을 초신성 폭발을 기독교권 사람들만 기록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극히 조심스러운 형태로 흔적을 남겼는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번에 동전에서 발견된 별 두 개는 로마제국 사람들이 은밀하게 남긴 과학적 기록들 중 하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