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포유류가 최초로 특정됐다. 농경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오랜 상식을 깬 발견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논문을 통해 고퍼(Gopher)가 토지를 이용해 번식과 생존에 유용한 식물을 수확하는 농경 생물이라고 전했다.

포유강 쥐목(설치목) 포유류를 총칭하는 고퍼는 중앙아메리카 및 북아메리카에 5속 35종이 서식한다. 지하에 광활한 땅굴을 파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고퍼는 다람쥐처럼 발달된 앞니로 식물 줄기나 뿌리, 곡식을 섭취한다.

연구팀은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주머니 고퍼(Pocket gophers)의 땅굴이 식물 생장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을 관찰하던 중 뜻하지 않게 농경 습성을 발견했다. 인간 외의 포유류가 농사를 짓는 것은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없다.

식물 뿌리나 가지, 잎을 먹는 고퍼. 땅굴을 비집고 나온 대왕소나무 뿌리를 가꿔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pixabay>

조사 관계자는 “고퍼들이 판 땅굴 조사에서 굴 내부에 여기저기 뻗어 나온 대왕소나무(대왕송) 뿌리가 확인됐다”며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고퍼들은 뿌리를 정성껏 키워 뜯어먹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토지를 이용해 유용한 식물을 기르고 이를 수확해 먹는 농경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며 “적어도 남아메리카 지역의 고퍼들은 지하에 광활한 터널을 파고 식물을 기르면서 이를 먹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왕소나무 뿌리는 길이 수백 m의 주머니 고퍼 땅굴 곳곳에서 발견됐다. 고퍼들은 대왕소나무 뿌리가 자리한 터널 구간을 유난히 매끄럽게 손질했다.

조사 관계자는 “생물학계에서는 그간 농사를 짓는 생물 몇 종이 보고된 바 있다”며 “딱정벌레나 흰개미 등 곤충이 대부분이었는데, 고퍼는 인간 외에 처음으로 농사를 짓는 포유류로 기록됐다”고 말했다.

고퍼는 수백 m 길이의 땅굴을 파고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킨다. <사진=pixabay>

이어 “고퍼들은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뿐만 아니라 배설물을 거름으로 주기도 했다. 땅굴까지 닿은 뿌리는 거름 덕분에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놀라워했다.

연구팀은 땅굴 내 뿌리의 수와 생장 정도, 고퍼들의 개체 수를 근거로 고퍼가 식물 뿌리로부터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20~60%를 조달한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고퍼들의 농경이 고도로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땅을 파 경작지를 유지하고 작물이 자라도록 좋은 환경을 유지하는 등 인간의 농업과 공통점이 많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 관계자는 “고퍼의 농사는 그들의 생존은 물론 토양에 공기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등 인간에게도 이로움을 준다”며 “고퍼들이 작물을 직접 심어 재배하지는 않았지만, 생장을 촉진하고 관리하는 것만으로 농경 동물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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