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대낮보다 한밤중에 위험한 행위를 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범죄심리학 관련 실험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 원인을 놓고는 의견이 분분한데, 최근 몇 년간 주목받는 것이 ‘심야 심리 가설(Mind After Midnight hypothesis)’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24시간마다 반복되는 개일리듬(circadian rhythm)에 의한 체내시계에 의해 지배된다. 낮에는 체내 분자 수준과 뇌 활동이 일어나 행동하도록 조정되고 밤이 되면 잠이 들도록 신호가 바뀐다.

‘심야 심리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시간대에 따라 심리나 행동이 달라지는 데는 개일리듬이 연관됐다고 본다. 사실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오래전 인류의 조상들은 해가 떨어지면 맹수들의 위협에 직면했다. 밤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 야간에는 특히 부정적 자극에 민감해졌다는 이야기다.

개일리듬으로 비롯되는 체내시계를 연구하면 심야에 벌어지는 극단적 선택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사진=pixabay>

이 가설에 세운 학자들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사람 심리만 파고들 것이 아니라 개일리듬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신경학자 엘리자베스 클러먼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 깨어 있지만 뇌가 낮과 마찬가지로 기능하지 못하므로 부지불식간에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즉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개일리듬 자체가 인체에 주는 영향을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수는 “오랜 세월 밤에 살아남기 위한 법을 터득하며 진화한 인간은 대낮에는 하지 않던 부정적 생각을 밤에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된다”며 “이런 경향은 잦은 밤샘이나 수면 부족으로 촉진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자살률은 대체로 밤에 높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밤중에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성은 밤이 낮보다 3배다. 2020년 미국 연구에 따르면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 자살할 확률은 낮보다 3배 이상 높다. 자살을 부른다는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의 과다 복용 위험은 심야에 무려 4.7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2020년 나왔다.

한밤중에 사람들이 어두운 생각에 휩싸이는 데 개일리듬이 관여한다고 보는 학자가 최근 늘고 있다. 사진 위 오른쪽이 엘리자베스 클러먼 교수다. <사진=DLDconference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Copilot Body Clock: How Biology Could Drive the Future of Technology(Klerman, Roenneberg)| DLD Sync' 캡처>

클러먼 교수는 “개일리듬의 영향으로 사람이 밤에 부정적 생각에 휩싸이는 증거는 더 있다. 마약 중독자가 낮에는 어떻게든 욕구를 억누르지만 밤이면 절대 참지 못한다”며 “불면증을 가진 사람은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질수록 절망감과 고독감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고 전했다.

‘심야 심리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밤중에 극단적 선택이 많은 이유를 개일리듬의 연관성에 입각해 연구·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국가나 정부 노력의 가이드라인도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클러먼 교수는 심야부터 새벽까지 약 6시간 동안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학계는 의외로 아는 것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릴 사람이 없는 밤에 주로 자살을 택한다는 등 지금까지 심야의 극단적 선택은 심리학적 연구가 많았다”며 “개일리듬과 연관 지으면 어둠이 사람에게 신경학적으로 주는 영향과 심야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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