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이자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사후 460주기(2024년)를 기념하는 작업이 벌써 시작됐다. 미국 시카고미술관은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남긴 드로잉을 모은 '대작가의 소소한 작품전'을 기획 중인데, 여기에는 그림으로 된 장보기 리스트가 포함돼 새삼 관심이 쏠렸다.
2020년 공개돼 대중의 눈길을 끈 이 리스트는 글을 모르는 하인과 조수들을 위해 미켈란젤로가 직접 그려 넣은 그림이 인상적이다. 이 리스트는 1400년대 유럽 사람들의 생활상도 그대로 녹아있는데, 미켈란젤로는 파스타와 생선 등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품목의 설명과 그림을 친절하게 넣어 눈길을 끈다.
시카고미술관 관계자는 "중세에 식료품 쇼핑을 하는 것은 아주 힘들었던 것 같다"며 "지금처럼 마트 한 곳에서 장보기가 끝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식품 하나하나를 전문점에 들러 구매하느라 하인들은 발품 깨나 팔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피에타' '다비드상' 등 불세출의 걸작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생활이나 작품 활동에 필요한 물품을 글을 읽을 수 없는 조수에게 사오라고 시켰다. 시카고미술관 관계자는 "미켈란젤로가 남긴 걸출한 작품들에 비하면 이 장보기 리스트는 소박하다"면서도 "식재료 목록 설명 오른쪽에 곁들인 만화 같은 드로잉에서조차 작가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 장보기 리스트는 현대인들이 휘갈겨 쓰는 그것과 기본적으로 같지만 미켈란젤로 특유의 실용적 관점과 천재성 등 예술가로서 재능이 집결돼 있다. 따라서 이 메모가 극히 사적일지라도 그 자체가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는 게 미술관 입장이다.
미술과 관계자는 "청어와 토르텔리니(파스타의 일종), 떫은 와인, 안초비 등을 글씨로 설명하고 이를 확연히 알아볼 만화를 곁들인 것은 글을 모르는 조수와 하인들에 대한 대작가의 배려심도 충분히 느끼게 한다"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