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표범 및 들소와 싸우는 남성 조각이 튀르키예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약 1만1000년 전 인류의 생활상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는 가치 있는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스탄불대학교 고고학 연구팀은 8일 국제 학술지 ‘Antiquity’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튀르키예 남부 사이불츠 유적에서 발굴한 맨손으로 야생동물과 대치하는 남성 조각을 공개했다.
조각에 등장하는 남성은 2명이다. 쭈그려 앉은 왼쪽 남성은 달려드는 들소를 향해 길쭉한 물체를 휘두르고 있다. 표범 사이에 몰린 오른쪽 남성은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양쪽에 표범을 둔 채 주요 부위를 쥔 기묘한 자세를 취해 눈길을 끈다.
연구팀은 표범 이빨이나 들소의 뿔을 상당히 강조한 점에서 이 조각이 인간에 엄습한 위기를 묘사했다고 파악했다. 극적인 상황을 가로로 맞닿은 길쭉한 돌 두 개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조각한 점에 주목했다.
조사 관계자는 “조각된 돌은 길이 3.7m, 높이 70~90㎝로, 들소와 대치한 남성 아랫배에 남근으로 추측되는 물체가 새겨졌다”며 “뻗은 왼손은 손가락이 6개이며 오른손에는 방울뱀 같은 것을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표범에 둘러싸인 남성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주요 부위를 잡고 왼손은 복부 댔다”며 “이는 민감한 부분을 지키려는 의도를 강조한 것으로, 당시 인류의 종족 번식 본능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두 이야기를 연속해 보여주는 신석기시대 조각은 발견된 전례가 없다며 놀라워했다. 석기시대 인류와 야생동물을 새긴 튀르키예의 또 다른 유적 괴베클리 테페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조사 관계자는 “이번 조각이 특별한 것은 복잡한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무리를 지켜낸 집합적 기억(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을 반영했다는 점”이라며 “사이불츠 유적지는 석기시대 수렵민족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곳으로, 이번 조각은 당시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이불츠 유적지는 2021년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유프라테스강 동쪽 56㎞, 시리아 국경 북쪽 32㎞에 자리한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기원전 9세기 수렵민족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농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조사팀은 조각이 새겨진 길쭉한 돌이 당시 정착민들의 행사나 모임에 사용된 일종의 벤치라고 생각했다.
조사 관계자는 “조각이 발견된 곳 주변은 중심을 향하도록 널찍하고 길쭉한 돌이 배치된 점에서 공유 건축물로 여겨진다”며 “사이불츠 유적은 아직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가 진행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