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암흑시대의 여성 교회 지도자 무덤이 새로 발견됐다. 당시 여성이 교회의 고위층에 오르고 기독교 전통이 이교도와 혼합되는 짤막한 시절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일 수 있어 관심이 쏠렸다.
런던고고학박물관(MOLA) 연구팀은 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영국 노샘프턴셔 하폴 지역에서 지난 4월 11일 발견된 무덤을 8개월간 조사한 결과, 암흑시대 여성 교회 지도자의 것일 가능성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5세기 서로마 제국이 쇠퇴하면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암흑시대는 1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은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지면서 문화가 크게 침체했다. 로마인이 감소하고 도시 문명과 경제가 쇠퇴하자 사람들의 도덕성이 해이해졌고,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폴의 무덤은 발굴 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상주하며 다각적인 조사를 펼쳤다. 학자들은 치아 에나멜을 발견하고 이곳이 오래된 묘지임을 직감했는데, 땅을 팔수록 발굴되는 진귀한 보물에 특히 주목했다.
조사 관계자는 "영화와 달리 고고학자가 흙이나 진흙 속에서 빛나는 황금과 보물을 발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며 "MOLA 발굴팀이 귀금속 유물을 발견한 것은 17년간 이어진 발굴 조사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무덤에서는 로마시대 동전을 비롯해 값비싼 유리 가공품과 귀금속으로 제작된 사치스러운 목걸이 등 보물 30점이 나왔다. 연구팀은 중세 영국 유적에서 나온 적이 없는 보물들이란 점에서 무덤 주인이 암흑시대 기독교의 여성 지도자라고 추측했다.
조사 관계자는 "망자의 유골은 치아 에나멜 파편 몇 조각 외에는 없었다"면서도 "목걸이는 대부분 여성의 시신과 함께 발견돼온 점에서 매장된 인물은 귀족이거나 지위가 높은 여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와 함께 커다란 십자가 장식이 달린 목걸이와 동전, 항아리, 구리로 된 얕은 접시도 묻혀 있었다"며 "십자가는 심하게 열화됐지만 오랜 시간에도 버틴 은으로 된 진귀한 인면 장식이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무덤 속 유물을 문화 및 종교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기독교와 이교도의 신앙이 혼재한 서기 630~670년 살았다고 파악했다. 망자를 화려한 장식품과 함께 매장하는 것은 이교도의 풍습이기 때문이다.
조사 관계자는 "이 무덤은 이교도들이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이던 시기의 급격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며 "유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하나같이 상징적인 점에서 이 여성은 공주나 수도원장, 또는 기독교 지도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중세 시대 높은 지위를 누린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 무덤이 총 12개 발견됐다. 연구팀은 7세기 이전의 무덤은 아주 희귀하고, 지위가 높은 매장자는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에서 이번 발견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서지우 기자 zeewoo@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