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에 탐사선을 내리지 않고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기발한 방법이 등장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연구팀은 13일 국제 행성 과학 저널 ‘The Planetary Science Journal’에 실린 논문에서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Enceladus)에 착륙하지 않고 생명체를 찾는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지름 약 498㎞인 엔켈라두스는 주성 토성과 약 24만㎞ 떨어져 있다. 토성 주위를 33시간 만에 공전하는데, 토성과 사이의 해비터블 존(골디락스 존)에 자리해 외계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위성을 뒤덮은 5~30㎞ 두께의 얼음 밑에 넘실대는 바다도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팀이 엔켈라두스의 생명체 탐사를 위해 떠올린 방법은 놀랍게도 착륙선이 불필요하다. 엔켈라두스 자체에 내려앉는 대신 표면에서 우주 공간으로 분출된 바이오마커, 즉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새로운 방법의 핵심이다.

엔켈라두스의 두꺼운 얼음층 밑에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바다와 분출하는 수증기의 상상도.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 연구팀은 수증기가 펄펄 끓는 바닷물이 압력에 밀려 얼음층을 뚫고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진=NASA·칼텍 공식 홈페이지>

미지의 천체에 탐사선을 내리는 미션 자체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요구된다. 더욱이 엔켈라두스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지질 조사도 쉽지 않다.

때문에 연구팀은 엔켈라두스의 얼음 표면으로 분출되는 뜨거운 수증기에 주목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토성 탐사선 ‘카시니(Cassini)’는 지난 2005년 엔켈라두스 표면의 호랑이 줄무늬(타이거 스트라이프, tiger stripes) 균열에서 지구의 ‘열수 분출공(뜨거운 물이 솟는 지표면 또는 해저의 구멍)’ 같은 수증기 분출을 포착했다.

엔켈라두스에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지자 학자들은 여러 탐사 방법을 생각했다. 수증기를 내뿜는 엔켈라두스의 얼음 균열에 소형 로봇을 잠수시키는 제안이 현재 유력하다. 다만 로봇이 바이오마커 채취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오염되지 않게 지구로 운반하기가 까다롭다. 

엔켈라두스의 수증기 분출의 원인을 예상한 그림. 해저 지각판 반응이 열수 분출공으로 뜨거운 물을 뿜으면 갈라진 지표면 얼음 틈으로 수증기가 솟아오른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사진=NASA·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우주 공간으로 솟구치는 수증기를 수집해 분석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연구팀 관계자는 “엔켈라두스 표면의 수증기는 화산 폭발처럼 엄청난 기세로 우주 공간으로 솟아오른다”며 “엔켈라두스 궤도까지 메탄균(메테인세균) 같은 생명의 흔적이 뿜어져 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카시니’의 수증기 관측 덕분에 엔켈라두스의 얼음 아래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는 것은 거의 확실해졌다”며 “수증기와 함께 다양한 유기물, 심지어 세포까지 솟아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구의 경우, ‘열수 분출공’의 분출물에는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전환해 메탄을 배출하는 메탄균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이 메탄균이 엔켈라두스에도 있다고 가정하고, 세포 등 유기분자도 함께 수증기를 타고 우주로 방출될 확률을 시뮬레이션했다.

엔켈라두스의 수증기 분출을 관측하는 카시니 탐사선의 상상도 <사진=NASA·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 공식 홈페이지>

그 결과 엔켈라두스의 생명은 모두 합쳐도 고래 한 마리 분량으로 추측됐다. 즉 엔켈라두스에 바다가 존재하더라도 지구만큼의 생명다양성은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궤도 상에서 세포 등을 발견하기에는 충분한 양이라는 게 연구팀 입장이다.

연구팀 관계자는 “탐사선이 우주를 떠다니는 세포 같은 물질을 검출하려면 그 양은 최소 0.1㎖가 필요하다”며 “수증기가 엔켈라두스 표면의 여러 곳에서 분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유기물을 회수할 때까지 탐사선은 엔켈라두스를 100회 이상 플라이 바이(천체 중력을 이용한 궤도 수정과 이에 따른 근접 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1997년 발사된 ‘카시니’는 토성에 다다른 이래 4년간 토성을 74바퀴 돌면서 타이탄에서 45차례나 플라이 바이했다. 즉 앞으로 개발될 탐사선이 엔켈라두스를 100회 근접 비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연구팀 생각이 맞다면, 사상 첫 외계 생명체는 행성이나 위성 자체가 아닌 우주 공간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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