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신경이 없지만 뭔가 닿거나 멀어지는 순간을 똑똑히 감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연구팀은 1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서 식물이 사람의 촉각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말을 못 하고 이동이 불가능할 뿐, 식물도 가꿔주는 사람의 손길을 분명하게 느낀다는 이번 연구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연구팀은 식물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지, 그렇다면 이는 동물의 촉각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에 나섰다. 우선 담배의 유전자를 조작해 세포 내 칼슘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기술을 학자들은 '칼슘 센서'라고 부른다. 이후 세포 중 하나를 골라 아주 얇은 유리봉으로 가볍게 자극했다. 이때 나타나는 반응을 고정밀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세포에 유리봉이 닿을 때와 떨어질 때 식물 내부에 서로 다른 신호가 발생했다. 실험 관계자는 "유리봉으로 건드린 뒤 30초가 지나자 칼슘 이온의 느린 물결이 부근 식물 세포로 전달돼 3~5분 정도 지속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식물은 유리봉이 닿은 것뿐만 아니라 떨어진 것도 느끼는 듯하다"며 "유리봉을 떼보니 거의 순식간에 다른 유형의 칼슘 이온 움직임이 발생했고, 1분가량 유지되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를 영상으로 제작해 일반에 공개했다. 동영상은 담배의 세포에 유리봉을 대거나 뗄 때 나타나는 칼슘 이온의 분명한 변화를 담았다. 식물 역시 동물처럼 다양한 유형의 외부 자극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움직임이 세포 내 압력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고 추측했다. 침투성 막이 있는 동물 세포와 달리 식물 세포는 튼튼한 세포벽으로 덮여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세포 내 압력이 변화한다.
연구팀은 보다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식물 세포에 가는 유리관을 꽂고 인위적으로 압력을 변화시켜 봤다. 예상대로 유리봉으로 닿았을 때와 비슷한 칼슘 이온의 물결이 발생했다.
실험 관계자는 "인간이나 동물은 감각 세포를 통해 외부의 자극을 느낀다"며 "식물은 세포 내부의 압력 변화를 통해 이런 기능을 구현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나 동물들이 신경 세포를 따로 가진 것과 달리, 식물은 모든 세포가 감각 구현에 관여한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식물이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은 이전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미모사와 같이 건드리면 잎이 움츠러드는 종이 있고, 해충이 다가오면 독성 물질을 뿜는 식물도 존재한다. 줄기나 잎을 닦아주면 식물 내부에서 칼슘 파동이 발생해 다양한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험 관계자는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활동적인 생물"이라며 "향후 연구에서는 뚜렷한 자극이 식물의 각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