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내의 화학 조성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독사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양서류의 방어 수단이 학계에 보고됐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30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뱀의 맹독에 내성을 갖기 위해 진화한 무족영원(Caecilian) 목 양서류들을 소개했다.

동남아시아와 파나마, 콜롬비아 등지에 서식하는 무족영원은 개구리나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지만 이름대로 발이 없어 커다란 지렁이를 떠올리게 한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혈거성 양서류인 무족영원은 마찬가지로 땅굴로 이동하는 뱀, 특히 독사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곤 한다.

무족영원 37종의 조직을 채취해 살펴본 연구팀은 이들이 니코틴성 아세틸콜린(ACH) 수용체 서브유닛(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 배열을 스스로 조합한 점에 주목했다. 이 수용체 단백질은 신경근 접합부에 존재하며, 뱀 독의 결합과 같은 화학 신호를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유명 유튜버 Brave Wilderness도 소개한 무족영원 <사진=Brave Wilderness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What a Worm' 캡처>

조사 관계자는 "ACH 수용체 서브유닛 배열을 분석한 결과 무족영원은 코브라의 신경독에 대한 내성을 최소 15회 독립적으로 진화시켰다"며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강요되는 가혹한 선택압에 대한 놀라운 반응으로, 독사의 진화에 맞춰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훌륭한 방어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경에 맞게 계속 진화하는 포식자에 먹히지 않으려면 먹잇감 역시 부단하게 발전해야 한다"며 "생물학에서 논하는 '붉은 여왕 가설'을 무족영원만큼 잘 보여주는 생물도 드물다"고 덧붙였다.

'붉은 여왕 가설'은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끊임없이 달려야만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붉은 여왕의 법칙처럼 생물이 최소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진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코브라 같은 독사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발이 없는 양서류 무족영원은 체내 화학조성을 진화시켰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무족영원이 서식하는 지역에 코브라나 비슷한 계열의 독사 산호뱀이 살며, 이들의 개체가 수십 년간 꾸준히 급증한 사실을 알아냈다. 뱀들은 점차 날래지는 먹이를 쉽고 확실하게 잡기 위해 주사기처럼 송곳니를 몸에 꽂고 독을 빠르게 주입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조사 관계자는 "진화한 독사에게 먹히지 않으려 개발한 무족영원들의 방어 수단은 다행히 큰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뱀들 역시 무족영원의 진화를 따라잡기 위해 조만간 다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생태계 속 수많은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진화적 경쟁을 잘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선택압에 굴하지 않고 생존 수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고 연구팀은 평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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