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부터 너구리까지 총 35종의 동물이 미국 플로리다 하수도를 비밀 기지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체 수는 무려 4000마리에 육박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환경학자 앨런 아이보리 박사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어반 내추럴리스트(Urban Naturalist) 최신호에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플로리다 게인스빌의 빗물 하수관 총 39곳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후 시간을 두고 어떤 동물이 하수도를 오가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척추동물 총 35종 약 3800마리의 활동이 확인됐다.

관찰 카메라에 실제로 잡힌 너구리 <사진=앨런 아이보리>

앨런 박사는 "플로리다를 상징하는 악어부터 수달, 아르마딜로, 너구리와 박쥐, 각종 양서류나 설치류 등 야생동물들은 인간이 조성한 하수도를 비밀 기지처럼 능숙하게 활용했다"며 "카메라에 가장 많이 찍힌 동물은 너구리, 다음은 박쥐"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이 사용하고 난 오폐수가 지나가는 하수도는 야생동물에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이라면서도 "플로리다의 빗물 하수관은 폭우나 폭풍우에 발생한 많은 빗물을 효율적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인 관계로 동물들이 애용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게인스빌의 하수도는 가정이나 공장의 폐수를 처리하는 오수 하수도와 다르다. 빗물 하수관은 연못, 개울, 배수지와 연결돼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수로나 다름없다. 악어들도 연못 사이를 오갈 때 빗물 하수관을 이용했다.

총 5곳의 카메라에서 확인된 악어. 하수도를 이동통로로 능숙하게 이용했다. <사진=pixabay>

앨런 박사는 "하수도 안은 어둡고 밀폐된 공간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너구리나 박쥐, 설치류 같은 동물들은 천적이나 악천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원래 이런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악어 같은 포식자는 여기 사냥감이 많은 것을 아는 듯했다. 악어는 식량 확보를 위해서도 빗물 하수관을 드나들었다"며 "하수도 출구 부근에서는 물고기를 찾아 몰려드는 새떼도 여러 번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이 살펴본 플로리다 게인스빌의 하수도 <사진=앨런 아이보리>

연구팀은 플로리다와 같은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에서는 지하 통로가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라고 강조했다. 도시계획을 세울 때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역설했다.

앨런 박사는 "예컨대 야생동물이 도망갈 길이 되는 램프를 설치하거나 안전한 출입구를 정비하면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전지구측위시스템(GPS) 및 환경 모니터링을 진행해 하수도 내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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