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으로만 알려졌던 로마 황제 네로의 극장이 발견되면서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로마시대 5대 황제 네로는 폭군으로 잘 알려졌으며, 그가 통치 기간(54~68년) 건설한 대규모 극장은 전부터 흔적을 찾으려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이 계속돼 왔다.
지난달 말 이탈리아 로마의 포시즌스 호텔 부지에서 드러난 네로의 극장은 현재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에 따르면, 네로는 64년 벌어진 대화재 때 로마의 7할이 불타는 상황을 극장에서 바라봤다.
네로의 전설적인 극장의 터는 바티칸 시와 인접한 사적 조사 중 확인됐다. 로마의 주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로마감독국이 주최한 작업이었는데, 극장은 로베레 궁전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아래에서 나왔다. 궁전은 15세기 교회에 의해 지어졌으며 고대 바티칸 기사단의 본부로 지금도 사용된다.
로마감독국은 궁전 내에 호텔이 건립될 계획이었기에 광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을 다음 세대에 확실하게 보존하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네로의 극장은 다행히 이 작업 도중에 발굴됐다.
이탈리아 역사학자들은 문제의 극장 터가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의 안전을 보장할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축조한 것이 틀림없다고 보고 있다. 네로의 극장에는 로마시대 문화를 담은 다양한 연극이 상연됐고 황제 스스로도 이따금 무대를 밟았던 만큼 그 가치가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로마감독국 관계자는 "극장을 건설하고 소유했던 네로 황제는 무대에 박수를 보내는 팬인 동시에 관객 앞에 섰던 배우이기도 했다"며 "약 2000년이 지나 겨우 빛을 보게 된 극장의 가치는 천문학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네로 극장의 정체를 확인해 주는 증거는 건설에 사용된 벽돌 각인"이라며 "이를 통해 극장이 로마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기원전 27~기원후 68년) 때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터가 네로 극장이 맞더라도 얼마나 많은 유물이 온전하게 남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는 견해도 있다. 발굴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직각 형태의 벽돌 구조물과 서쪽을 향한 무대 일부, 계단과 벽체, 얼룩덜룩한 대리석 기둥과 금박을 붙인 도자기 파편이 발견됐다.
로마감독국은 네로 극장의 발견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로마제국의 탄생으로부터 15세기까지 로마와 주변 국가의 상세한 역사를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극장 터에서는 로마제국의 탄생부터 15세기까지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과 유구가 많이 나왔다"며 "10세기 색이 들어간 희귀한 유리 고블릿(잔의 일종) 7개가 나왔는데, 지금까지 겨우 발견한 로마시대 고블릿이 단 7개인 점에서 이번 발견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로마감독국은 네로 극장 터의 유물을 박물관으로 이송하는 동시에, 유구는 조사가 끝난 뒤 최종적으로 다시 매립할 예정이다. 과거 인간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유구들은 보통 이런 방법으로 영구 보존된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