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한때 지구상에 1000여 명만 남을 만큼 심각한 멸종 위기를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과학원 인류학 연구팀은 지난달 3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소개된 조사 보고서에서 인류의 조상이 90만 년 전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렸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개체군 병목 현상을 관찰해온 연구팀은 세계 각국 사람들로부터 얻은 게놈 정보를 취합,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들에 따르면 90만 년 전 대략 10만 명이던 인구는 단 1280명까지 급감했다. 전체 인구의 98.7%가 줄어든 이 극단적 상황은 무려 11만7000년간 이어졌다.

조사 관계자는 "분명히 이 시기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인류 조상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며 "현재 우리가 멀쩡하게 번성한 것을 보면, 선조들은 극단적인 위기를 잘 극복한 모양"이라고 전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몇 차례 개체군 병목 현상을 겪은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TED ED 공식 유튜브>

유전적 병목 또는 집단 병목이라고 하는 개체군 병목 현상은 질병이나 재해, 전쟁 등으로 개체군의 크기가 줄면서 유전적 변이가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원인으로 인구가 대폭 줄어든 적이 몇 차례 있다. 약 7000년 전 북반구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급감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인류의 과거사를 조사할 때 야기되는 수치상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핏콜(FitCoal)'방식을 고안했다. '핏콜'은 'fast infinitesimal time coalescent process'의 약자로, 융합 프로세스를 이용해 어떤 현상을 모델화할 수 있다.

'핏콜'을 통해 아프리카계 10개 그룹 및 비 아프리카계 40개 그룹 현대인 3154명의 게놈 데이터를 해석한 결과 약 93만~81만 3000년 전, 인류는 유전적 다양성을 최대 65.85%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0만 명 가까이 있던 인구가 불과 1280명으로 줄었다고 추측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 등으로 약 90만 년 전 인류는 전 세계에 약 1280명이 남을 정도로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이런 사태가 벌어진 원인을 100%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 시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분명하며 기후변화가 가장 의심된다는 입장이다.

조사 관계자는 "플라이스토세 전기에서 중기로 바뀌던 시기 지구는 급격히 차가워졌다. 추위는 가뭄으로 인한 기근을 야기하고 당시 인류를 사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라며 "인류에게 가혹했던 이 시대는 어쩌면 우리의 진화에 크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이 시기 인간의 염색체 2개가 합쳐지면서 결과적으로 염색체가 23쌍을 이뤘다고 추측했다. 현재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인데, 유인원을 포함한 인간속 동물들의 염색체는 24쌍이다.

조사 관계자는 "염색체의 결합은 90만 년 전 인류가 겪은 큰 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이번 발견은 인류의 유전적 병목을 확실히 이해하는 첫 단계로 큰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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