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미술품의 위작 여부를 가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의 그림 ‘장미의 성모(Madonna of the Rose)’ 일부를 타인이 그렸을 가능성이 AI의 정밀 분석 과정에서 드러났다.
영국 브래드퍼드대학교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21일 분석 보고서를 내고 ‘장미의 성모’가 라파엘로 외의 인물이 가세해 완성됐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AI 알고리즘을 사용한 새로운 분석 방법이 그림의 원작자를 얼마나 정확하게 특정하는지 실험했다. AI는 ‘장미의 성모’를 완성한 수많은 붓질 중 일부가 라파엘로 이외의 인물의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위대한 예술가다. 다만 ‘장미의 성모’ 등 일부 작품은 원작자 외의 화가가 덧칠을 했다는 의혹이 계속돼 왔다.
연구팀은 라파엘로 특유의 붓 터치가 잘 드러나는 ‘장미의 성모’를 기반으로 맞춤형 분석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진짜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확인된 회화의 사진을 훈련한 AI는 그 붓질과 색의 배합, 음영 등 특징을 분석·학습했다.
연구를 이끈 브래드퍼드대 하산 우가일 교수는 “컴퓨터는 인간의 눈과 비교해 현미경 수준으로 그림을 분석할 수 있지만 한 예술가의 그림들은 변수가 생각보다 많다”며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이미지 AI 레스넷(ResNet)50에 서포트 벡터 머신(SVM) 기술을 조합해 ‘장미의 성모’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SVM은 제시된 샘플들에 대한 그룹 분류의 규칙을 찾아내는 AI 기술이다. 방대한 이미지 학습이 가능한 레스넷50에 서포트 벡터 머신을 결합한 결과 라파엘로의 그림 인식률은 98%까지 향상됐다.
하산 교수는 “AI는 보통 그림 전체를 훈련하지만 이번에는 그려져 있는 개별 인물의 얼굴을 식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며 “‘장미의 성모’에 그려진 인물 한 명은 라파엘로의 터치로 완성되지 않은 사실이 마침내 밝혀졌다”고 전했다.
AI는 ‘장미의 성모’에 등장하는 네 인물 중 맨 왼쪽의 성 요셉만은 라파엘로가 아닌 미지의 인물이 그렸다고 판단했다. 감정사들은 전부터 ‘장미의 성모’ 속 요셉의 얼굴이 마리아나 아기 예수 등 다른 세 인물에 비해 완성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라파엘로의 제자 중 한 명인 줄리오 로마노가 성 요셉의 얼굴을 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확증은 없으며, AI를 이용한 이번 분석에서도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산 교수는 “이번 연구는 AI가 미술 전문가를 대체하고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도울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예술 작품의 진위를 가려내는 과정은 출처부터 물감, 작품 상태 등 여러 면을 살펴야 하므로 빠른 시간에 딥러닝이 가능한 AI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