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영국 ‘케른 아바스의 거인(Cerne Abbas Giant)’은 신화 속 헤라클레스를 묘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이킹의 침략을 받은 앵글로색슨 7왕국 웨식스의 군인들이 집결지로 사용하기 위해 언덕에 헤라클레스를 그렸다는 연구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루드 맨(Rude Man)’으로도 불리는 ‘케른 아바스의 거인’은 영국 남서부 도싯 주 전원지대의 탁 트인 언덕에 펼쳐진 지상화다. 한 손에 거대한 곤봉을 든 거인의 크기는 가로 약 55m, 세로 약 51m나 된다.

푸른 잔디를 파내고 석회를 채우는 방식으로 그려진 ‘케른 아바스의 거인’은 그 정체를 두고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주장이 제기됐다. 그중 하나가 헤라클레스 설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나왔다.

이 대학 역사학자 헬렌 지토스 교수는 ‘케른 아바스의 거인’이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의 상이며, 바이킹에게 공격받던 시절 웨스트색슨 군인들의 집합 장소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교수는 근거로 거대한 곤봉과 다부진 몸을 들었다.

중세 시대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케른 아바스의 거인(루드 맨) 지상화. 헤라클레스를 묘사한 그림이라는 주장이 또 제기됐다. <사진=내셔널 트러스트 공식 유튜브 영상 'How the National Trust cares for Britain's naughtiest chalk figure, Cerne Giant' 캡처>

그는 “원래 ‘루드 맨’은 색슨의 신, 이교도의 신 또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 등 설이 다양했다”며 “영국의 헤라클레스로 불린 17세기 정치인 올리버 크롬웰을 적들이 조롱해 그렸다는 시각이 한때 우세했다”고 전했다.

이어 “거인상이 그려진 곳은 습격해 오는 바이킹과 싸우기 위해 웨스트색슨 군이 집결하기 쉬운 지역”이라며 “결전을 앞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근육질의 헤라클레스를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수는 헤라클래스 설이 그간 부정된 것은 ‘루드 맨’을 지역 수호성인으로 남게 하려는 수도사들의 의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토스 교수는 “헤라클레스는 복근과 탄탄한 아랫배 라인을 드러낸 나체로 묘사된다”며 “중세 초기 고전적인 신 헤라클레스의 인물상을 만든 것은 다소 위화감이 있지만 곤봉과 사자 가죽 망토가 결정적인 단서”라고 설명했다.

케른 아바스의 거인 지상화는 잔디를 파내고 석회를 채웠다. 17세기 기록에도 나오며, 내셔널 트러스트 등 민간단체들이 정기적으로 보수 작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내셔널 트러스트 공식 유튜브 영상 'How the National Trust cares for Britain's naughtiest chalk figure, Cerne Giant' 캡처>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 가죽으로 된 망토를 두르고 거대한 곤봉을 휘두른다. 교수는 원래 이 거인상의 왼팔에 네메아의 사자 가죽 망토가 걸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토스 교수는 “아마도 거인상은 비교적 최근인 서기 700년~1100년 중세 초기에 그려졌을 것”이라며 “당시 영국은 기독교 국가였지만 일부 집단은 헤라클레스 상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고 언급했다. 특히 “헤라클레스에 대한 관심은 고대에 끝나버린 것이 아니며,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용기는 군인들에게 최고의 상징으로 사용됐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들은 거인상이 그려진 곳이 웨스트색슨 왕가가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나 농지와 멀지 않아 이번 연구가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잔디를 파고 석회를 채운 지상화라는 점에서 망토는 얼마든 지울 수 있었을 것으로 일부 학자는 추측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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