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벌레의 가사 상태를 발동하는 분자 스위치를 과학자들이 특정했다. 완보동물의 하나인 곰벌레는 극한의 온도와 고기압, 방사선을 견디기 때문에 미 항공우주국(NASA)도 주목하는 희한한 생물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29일 공개한 실험 보고서에서 곰벌레가 특유의 가사 상태에 돌입해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메커니즘을 일부 규명했다고 전했다.

몸길이가 1㎜도 되지 않는 곰벌레는 지구상에 1000종 넘게 존재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턴(tun)이라는 일종의 가사 상태가 되는데, 대사가 엄청나게 느려져 오래 먹지 않아도 초고온 및 초저온에서 버틴다.

우주 공간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것으로 생각되는 곰벌레 <사진=NASA·와이오밍대학교·Thomas Boothby>

연구팀은 곰벌레의 하나인 힙시비우스 엑셈플라리스(Hypsibius exemplaris)를 동원해 실험에 나섰다. 곰벌레들을 80℃의 고농도 저온 과산화수소 및 고농도 소금, 설탕 용액 등 가혹한 환경에 노출해 자극을 줬다.

이후 곰벌레의 체내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관찰한 연구팀은 턴 상태에 들어가는 분자 스위치를 특정했다. 연구에 참여한 노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자 아만다 스미더스 교수는 "지구 최강의 생물답게 곰벌레는 턴 발동에 활성산소를 사용했다"며 "스트레스를 받은 곰벌레가 가사 상태에 들어가는 생물학적 과정은 이미 밝혀졌지만 무엇이 턴을 발동하는지 알아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이 곰벌레가 휴면 모드로 들어가는 분자 스위치 기능을 하는 것 같다"며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곰벌레의 체내에 활성산소가 쌓이면 그것이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스테인의 분자 스위치를 산화시키고 이를 계기로 턴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상에 1000종 넘게 존재하는 곰벌레. 주변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사 상태인 턴에 들어간다. <사진=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공식 홈페이지>

불안정하고 쉽게 반응하는 활성산소는 강한 산화작용이 특징이다. 우리 몸의 면역력이나 세포 전달 물질과 관련된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너무 많아지면 노화를 유발하거나 질병의 방아쇠가 된다.

이번 실험 결과 곰벌레의 시스테인이 기능하지 않을 경우 절대 휴면 모드가 발동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활성산소가 곰벌레의 가사 상태를 일으키는 중요한 사인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미더스 교수는 "인체에 해로운 활성산소조차 곰벌레에게는 생존을 위한 도구"라며 "곰벌레가 지구 최강의 생명력을 가진 이유 하나가 막 해명됐을 뿐, 아직 풀 수수께끼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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