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코끼리물범이 익사 직전의 새끼 바다표범(물범)을 구하는 희한한 상황이 포착됐다. 번식기 수컷 코끼리물범이 보여준 이타적 행동에 학계가 주목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포인트레예스 국립해안공원 연구팀은 16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물에 빠진 새끼 물범을 구한 수컷 코끼리물범의 사례를 전했다. 원래 코끼리물범 수컷은 번식기에 암컷과 교미를 최우선시하는데, 종이 다른 물범 새끼를 구한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지난 1월 포인트레예스 국립해안공원에서 코끼리물범 사진을 촬영하던 연구팀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물범 새끼를 목격했다. 생후 2주 정도로 아주 작은 새끼는 당시 헤엄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어미를 찾는 듯 몸부림치며 머리를 수면 위로 간신히 들고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미가 새끼를 구하려 했지만 파도가 거세 접근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이를 지켜보던 근처의 코끼리물범 수컷이 성큼성큼 다가가 새끼를 구해냈다. 수컷은 새끼를 밀어 해변 근처까지 올려줬다. 심지어 지친 새끼가 다시 바다로 휩쓸리지 않도록 몸으로 파도를 막았다. 기적 같은 구출극은 약 20분간 계속됐다.

북방코끼리물범과 남방코끼리물범으로 구분되는 코끼리물범. 번식기 수컷은 에너지를 교미에만 사용한다. <사진=pixabay>

조사를 이끈 사라 엘런 연구원은 "생전 처음 보는 구출극은 코끼리물범 수컷이 보여준 최초의 이타적 행동"이라며 "코끼리물범 수컷은 몸길이 4~5m, 체중 1.5~2.3t으로 육중하며, 번식기 아주 공격적이어서 새끼 물범이나 다른 동료를 짓눌러버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끼리물범 수컷은 보통 번식을 위한 생식 행위만 참여할 뿐 육아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새끼, 그것도 다른 종인 물범을 구한 것은 매우 놀랍다"고 덧붙였다.

학자들은 코끼리물범 수컷의 행위가 일회성 또는 우연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다만 20분에 걸쳐 새끼를 구했고 몸으로 파도를 막은 점에서 분명한 이타적 행위라는 의견도 많다.

코끼리물범의 새끼 물범 구조 장면. (a)새끼를 부르는 어미 물범 (b)새끼 쪽으로 향하는 수컷 코끼리물범
(c)새끼를 물가로 밀어주는 수컷 (d)새끼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막는 수컷 (e)새끼와 재회한 뒤 울음소리를 내는 물범 어미 (f)물범 모자의 상봉을 지켜보는 수컷 코끼리물범 <사진=포인트레예스 국립해안공원 공식 홈페이지·사라 엘런>

사라 엘런 연구원은 "수컷과 암컷 사이에 이종교배 등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며, 이는 유전자 분석을 해봐야 아는 내용"이라며 "수컷이 새끼 바다표범을 도운 동기를 알아낼 수 있다면 가끔 동물이 보이는 비슷한 행동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같은 이종 동물 간의 이례적 행동은 사자, 범고래, 침팬지, 멧돼지 등에게서도 관찰된다. 2022년 탄자니아국립공원에서 암사자가 사냥감인 누 새끼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상황이 카메라에 잡혔다. 암사자는 새끼를 누 무리에 데려다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2023년에는 범고래 무리가 참거두고래 새끼와 이동하는 진귀한 광경이 아이슬란드 서부에서 확인됐다. 세력 다툼을 하는 참거두고래의 새끼를 범고래가 볼모로 잡았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범고래들이 새끼가 헤엄치기 쉬운 대형과 영법을 썼다는 점에서 이타적 행동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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