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오랑우탄이 상처 치료를 목적으로 약초를 활용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도구를 사용하는 등 똑똑한 동물로 잘 알려진 오랑우탄이지만 야생동물이 사람도 쓰는 약초로 부상을 치료한 것은 전례가 없다.
독일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2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소개된 조사 보고서에서 얼굴에 난 상처를 약초로 치료한 야생 오랑우탄을 소개했다.
이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 서식 중인 수컷 라쿠스다. 연구팀은 오른쪽 눈 아래에 깊은 상처를 입은 라쿠스가 스스로 약초를 으깨 발라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 이사벨 라우머 연구원은 "라쿠스는 2022년 6월 한쪽 눈 아래가 푹 파이는 부상을 입었다"며 "놀랍게도 라쿠스는 알라만다 속 덩굴식물 아카 쿠닝(Akar Kunig)을 질겅질겅 씹어 눈 밑에 붙였다"고 전했다.
연구원은 "아카 쿠닝은 상처 치료 등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지역 주민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식물"이라며 "라쿠스는 잘 씹은 잎을 꿀꺽 삼키지 않고 손가락에 덜어 상처에 정성껏 발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라쿠스는 첫 치료 다음날에도 아카 쿠닝 잎을 씹어 상처에 발랐다. 매일같이 새 잎을 따 으깨 바른 덕인지 일주일 뒤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1개월 반 정도가 지나자 거의 완치됐다. 연구팀은 라쿠스에게 감염 증상이 없는 것도 확인했다.
이사벨 연구원은 "이전에도 오랑우탄이 특정 식물을 몸에 바르는 것은 목격됐다"면서도 "유효성분이 확인돼 사람도 쓰는 약초를 야생 오랑우탄이 상처 치료에 적극 이용한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쿠스의 치료가 의도적이었다고 확신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잎을 따서 씹고 즙을 상처 부위에만 반복해서 바른 것으로 보아 부상 치료를 시도했음은 거의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서 21년간 2만8000시간 동물을 관찰한 학자들의 기록에는 이번 같은 치료 행위는 없었다. 연구팀은 라쿠스가 이전에 우연히 아카 쿠닝 잎을 씹었고, 상처에 닿자 통증이 줄어드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추측했다. 오랑우탄은 다른 개체의 행동을 관찰해 기술을 배우는 영리한 동물이다.
이사벨 연구원은 "라쿠스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왔기 때문에 이전 커뮤니티에서 약초 치료를 배웠을 수 있다"며 "영장류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식물을 이용한다는 귀중한 증거가 하나 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