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2017)가 다룬 천문학자들의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 및 왕따가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왕립천문학회(RAS)는 최근 천문학계 왕따 및 차별 보고서(Bullying and harassment report)를 공개하고 학계의 오래된 고질병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RAS는 제3자 기관에 위탁해 천문학 및 지구물리학 연구 회사 및 기관, 단체의 괴롭힘, 따돌림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7%가 몹쓸 상황을 겪었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왕따는 성별 차이가 특히 컸다. 괴롭힘을 2회 이상 당한 사람은 남성이 24%, 여성이 44%로 대략 2배 차이였다. 이분법적 성별 규정을 거부하는 논 바이너리(자신의 성을 정의하지 않음) 또는 서드 젠더(제3의 성)의 경우 이 수치가 56%까지 올라갔다.
남성의 경우 한 번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4%인데 비해 여성은 41%로 낮았다. 논 바이너리 및 서드 젠더는 39%로 여성과 비슷했다.
장애인 중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39%, 1회는 9%, 2회 이상은 52%였다. 비장애인의 경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56%로 가장 많았고 1회는 12%, 2회 이상은 32%였다.
인종별로 보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경우는 흑인 및 혼혈이 49%, 동양인이 50%, 백인이 57%였다. 1회는 11%와 17%, 11%, 2회 이상은 41%와 33%, 32%로 각각 집계됐다.
RAS 관계자는 “레즈비언이나 게이, 양성애자(바이섹슈얼) 등 퀴어 연구자의 절반은 설문조사 전 24개월 동안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며 “양성애자 천문학자의 12%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이어 “학생이나 비정규직 연구자 등 경력이 불안정한 사람 역시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며 “응답자의 30%는 고용주가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다고 봤고, 권력이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가해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천문학 등 우주개발과 관련된 연구 분야의 왕따와 괴롭힘, 차별 문제는 오래됐다. 1960년대 미국의 머큐리 계획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 ‘히든 피겨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 등이 우수한 실력에도 ▲회의 참석 ▲화장실 이용 ▲식당 이용 등에서 온갖 차별 대우를 받은 일화를 그려 반향을 일으켰다.
RAS 관계자는 “‘히든 피겨스’ 같은 영화가 주목을 받으며 학계의 고질적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나 싶었으나, 설문 조사를 보면 실상은 여전히 암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