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쌓인 경험을 떠올려 다음 행동에 반영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고도의 인지 능력을 박쥐도 가졌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야생동물 연구팀은 박쥐가 시간의 경과를 인식하는 것은 물론, 앞날도 예상한다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4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텔아비브대 병설 동물연구원에서 방사 중인 박쥐목 과일박쥐과 이집트과일박쥐(Egyptian Rousette)를 이용해 지능 테스트를 실시했다.

우선 연구팀은 이집트과일박쥐에 전지구측위시스템(GPS) 장비를 부착하고 이들이 어떻게 먹이활동을 하는지 살펴봤다. 첫 실험에서는 박쥐가 시간이 경과하면 나무에 열린 열매가 없어진다는 것을 파악하는지 알아봤다.

이집트과일박쥐의 추적 조사에서 놀라운 지능이 확인됐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박쥐를 하루에서 7일 정도 사육장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하루만 갇힌 박쥐는 전날 밤 열매를 딴 나무를 찾아 먹이활동에 나섰다. 이와 달리 7일간 사육장에 머문 박쥐는 장기간 열매를 맺는 수목을 찾아다녔다. 이런 경향은 경험이 풍부한 박쥐일수록 두드러졌다.

실험 관계자는 "이집트과일박쥐는 나무의 성질과 경과한 시간을 모두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며 "박쥐들이 열매의 유무를 예측해 장시간에 걸쳐 열매를 맺는 수목과 단기간 열매가 열리고 떨어지는 나무를 골라 먹이활동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짧은 기간만 열매를 맺는 과실수는 일찍 열매가 없어지기 때문에 일주일 사육장에 갇혔던 박쥐들은 장기간 열매를 맺는 나무만 찾아다녔다"며 "박쥐들은 시간의 흐름은 물론 나무의 성질까지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집트과일박쥐를 이용한 먹이활동 추적 조사 개요도 <사진=텔아비브대학교·커런트 바이올로지 공식 홈페이지>

박쥐가 나무의 성질을 파악하는지 추가로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다른 실험에 나섰다. 사육장의 박쥐는 저녁 일찍 나와 먹이를 찾으러 가는 개체도 있고, 사육장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그릇에 놓인 과일을 먹기도 했다.

인간이 준비한 과일은 당분과 수분이 풍부하고 단백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육장의 먹이를 먹지 않은 박쥐는 수분이 많은 과일을 찾아 비행했다. 반면 사육장의 먹이를 먹은 박쥐는 단백질이 함유된 과실을 찾아다녔다.
 
조사 관계자는 "우리 실험은 이집트과일박쥐가 시간의 경과를 이해하는 등 고도의 사고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며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생각됐던 이런 지능이 박쥐 외의 다른 동물에서도 확인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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