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멸망한 고대 도시 폼페이에서 로마 고위 권력자의 무덤이 발굴됐다. 비문에는 로마의 지배 구조나 엘리트 활용 방침을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이탈리아 나폴리페데리코2세대학교 역사학 연구팀은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폼페이에서 로마시대 지배 구조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유물이 나왔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폼페이에 자리한 고고학공원(Archaeological Park of Pompeii, APP) 인근에서 우연히 로마시대 권력자의 무덤을 발견했다. 비문 등을 조사한 결과 무덤 주인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중용한 최고위급 인사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를 병합해 지중해 지역을 통일하고 수많은 전쟁과 영토 확장을 거듭해 팍스 로마나 시대의 기초를 구축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새로 발굴된 무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섬긴 누메리우스 아그레스티누스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APP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발견된 무덤은 반원형의 스콜라(schola) 양식"이라며 "폼페이에서는 스콜라 무덤이 전에도 나왔지만 이번 것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크고 또렷한 비문이 새겨졌다"고 말했다.

이어 "붉은 도료의 흔적이 일부 남은 비문은 상당히 정성 들여 규칙적으로 음각됐다"며 "주로 무덤에 안치된 인물의 지위와 권력, 업적, 폼페이에서의 생활을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폼페이는 기원전 89년 로마제국의 정무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 정복돼 식민도시가 됐다. 168년 뒤 베수비오 화산 분화가 일어날 당시 이 무덤은 이미 방치돼 흙에 깊이 묻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비문이 온전히 남을 만큼 무덤은 피해를 모면했다.

무덤 주인에 대한 설명과 당시 정치, 사회적 이슈가 무덤 곳곳에 비문처럼 남아있다. <사진=APP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에 따르면, 비문은 "누메리우스의 아들 누메리우스 아그레스티누스는 정의로운 전사이자 호민관, 이두정치의 최고 권력자, 아우트리고네스의 장관을 지낸 정치가였다. 원로원의 결정으로 이 영예로운 장지를 수여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우트리고네스는 이베리아반도 북부 민족이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9~19년 히스파니아(포르투갈, 스페인, 안도라, 지브롤터 등 로마시대 이베리아반도 국가들) 점령을 위한 칸타브리아 전쟁을 벌였다. 비문대로라면 누메리우스 아그레스티누스는 현재의 스페인 지역을 다스렸다.

조사 관계자는 "폼페이 남동쪽의 포르타 노체라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또 다른 묘비를 통해서도 누메리우스 아그레스티누스의 신원이 확인됐다"며 "히스파니아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전 국토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번 발견으로 스페인 역사에 대한 새 정보도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무덤은 베수비오 화산 분화 전부터 흙에 묻힌 상태여서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사진=APP 공식 홈페이지>

이어 "누메리우스 아그레스티누스는 로마 과두제의 최고 지위에 두 번 올랐지만 정복 전쟁의 일선에서 싸운 군인이기도 했다"며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묘비가 딸린 개인 무덤을 받게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비문의 내용이 로마제국이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던 시기 권력 구조를 알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로마 제정의 엘리트들을 연결하는 권력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한편, 거주지에서는 안정된 삶을 보장하면서도 위험한 전쟁터에 파견한 로마제국의 엘리트 시스템을 엿보게 해준다는 입장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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