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위기에 몰린 지구상의 생물 샘플을 달에 저장하는 안을 미국 과학자들이 제안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개념이어서 실행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미국 하와이 해양생물학연구소(HIMB) 연구팀은 지난달 말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연구팀은 천연 냉동고인 달에 지구의 멸종 위기종 세포를 보관해 멸종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HIMB 마리 하게돈 박사는 "멸종 위기를 맞은 지구의 동식물은 DNA를 이용해 어떻게든 종을 유지해야 한다"며 "DNA 샘플을 보존하면 최악의 경우 멸종하더라도 클론을 만들어 부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지구 외 행성의 테라포밍에 대비해 지구 동식물 샘플 저장은 필수"라며 "전쟁이나 급속한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지구는 이 샘플을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절대 못 된다"고 덧붙였다.

달 표면에 지구 동식물의 DNA 샘플을 옮기자는 학자들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pixabay>

HIMB 연구팀의 생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설치된 지하 종자은행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는 질병이나 가뭄으로 소중한 작물이 멸종할 경우를 대비한 시설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우주·지상로봇탐사연구소 제칸 탄가 소장은 2021년 열린 전기전자학회(IEEE) 항공우주컨퍼런스에서 일명 '달 방주(lunar ark)'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탄가 소장은 지구가 핵 전쟁이나 태양 플레어, 전염병 대유행, 기후 변화 등 위협에 시달리고 있어 비교적 안전한 달에 동식물 샘플을 보관하자고 주장했다. 

마리 하게돈 박사는 "스발바르국제종자저장고는 계속되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하마터면 침수 피해를 입을 뻔했다"며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종자은행은 이미 2022년 포격을 받아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박사는 "물론 달도 100% 안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인간에 의한 재앙은 없을 것"이라며 "지구의 위성인 달은 아름다운 푸른 별에서 나고 자란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이상적인 장소"라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가장 큰 스피츠베르겐 섬 산허리에 지어진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 2008년 오픈했다. <사진=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 VR 투어 공식 홈페이지>

달은 천연 냉동고로 통한다. 극지 근처에 자리한 크레이터 내부는 1년 내내 햇빛이 들지 않는다. 인간이 일일이 관리하거나 전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밀폐 시설만 만들면 영하 196℃ 초저온 냉동이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보고 있다.

마리 하게돈 박사는 "다행히 달의 극저온 환경에서 복제에 필수적인 살아있는 세포를 보관하는 기술은 확보했다"며 "세포가 활동을 정지할 정도의 저온에서 망둑어 세포를 보존하는 최근 실험도 성공했다"고 전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안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달 표면에 저장고를 짓는 데 수십 년이 소요될 수 있고, 자금도 많이 들어 부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일부 학자는 참신한 계획이라고 반겼지만, 현재 지구의 생물을 지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자는 의견도 적잖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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