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소년 카스파 하우저가 사라진 왕자라는 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카스파 하우저는 19세기 독일 뉘른베르크에 홀연히 나타난 소년으로, 그 존재는 약 200년에 걸쳐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과대학교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 최신호를 통해 카스파 하우저의 DNA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카스파 하우저에 대해 법의학적 분석을 시도한 연구팀은 책과 영화, 연극까지 등장한 기묘한 소년이 왕자라는 설은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카스파 하우저는 1828년 5월 26일 바이에른 왕국 뉘른베르크에 나타났다. 당시 나이는 16세로, 옷차림은 남루하고 인간다운 생활은 거의 하지 못한 반 야생 상태로 많은 충격을 줬다. 소년은 수수께끼의 남자에게 사로잡혀 어둡고 추운 지하 감옥에서 자랐다는 내용의 편지 2통을 소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카스파 하우저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 출신에 대해 금세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루머는 카스파 하우저가 남독일 바덴 대공국을 지배하는 카를 대공의 적자, 즉 고귀한 핏줄이라는 것이었다.

독일 화가 요한 로렌츠 크로일이 그린 카스파 하우저 <사진=아이사이언스 공식 홈페이지>

카를 대공의 아들은 1812년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스파 하우저가 갑자기 등장하자 바덴 대공국의 후계자 아들이 실은 유괴됐고, 방계 혈통을 왕위에 올리기 위한 음모에 의해 빈사의 아이와 바꿔치기 됐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인스브루크의대 발터 파르손 교수는 "진짜 하우저 본인이 등장 5년 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면서 이 소문은 더 빨리 확산됐다"며 "하우저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 읽고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자 비밀을 발설할까 두려운 바덴 대공국 후계자 유괴의 주체가 손을 썼다는 설이 유력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소문의 진상을 법의학적으로 재조사했다. 수년 전 카스파 하우저의 모발과 혈액에서 채취한 DNA가 바덴 대공국 가문의 핏줄과 일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하우저가 칼에 찔린 날 속옷에 묻었다는 혈흔에 집중했다.

발터 교수는 "인간이 사망한 뒤 DNA는 점점 짧은 조각으로 분해되고,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요소조차 사라져 버린다"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에 이용할 수 있었던 DNA 분석법은 긴 DNA 조각에는 유효했지만 하우저의 소지품에서 채취한 DNA는 정확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베르너 헤어조크(81) 감독의 1974년 영화 '카스파 히우저의 수수께끼(The Enigma of Kaspar Hauser). 국내에서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사진=영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스틸>

그는 "최신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사용해 하우저의 모발과 혈액 샘플을 다시 들여다보고 외가에서 물려받은 미토콘드리아 DNA도 조사했다"며 "하우저의 DNA는 모발 샘플 전체의 것과 같았고 1990년대 혈액 샘플 분석 결과와도 일치했다. 이로써 샘플의 신빙성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당 미토콘드리아 DNA를 바덴 대공 가문의 자손과 비교한 결과는 불일치였다. 즉 하우저의 유전자는 바덴 대공국 계통과 분명히 다르며, 그가 바덴 가문의 적자라는 일설은 과학적으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발터 교수는 "하우저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서유라시아인의 것이라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특정할 수 없었다"며 "그가 왕가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카스파 하우저의 미스터리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