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년 조난한 프랭클린 원정대에서 카니발리즘, 즉 식인이 벌어졌다는 가설이 최신 연구를 통해 뒷받침됐다. 영국 해군 제독 겸 모험가 존 프랭클린은 1845년 대원 129명을 이끌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서항로 개척에 나섰다가 캐나다 북극권 킹윌리엄섬 인근 빅토리아 해협에서 실종됐다.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인류학자 더글러스 스텐튼 교수 연구팀은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빅토리아 해협의 얼음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프랭클린 원정대원 중 일부가 살기 위해 식인을 벌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1846년 얼음에 갇힌 프랭클린 원정대는 1847년 6월 11일 존 프랭클린이 사망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탐험선 중 하나인 HMS 에레버스를 지휘하던 제임스 피츠제임스는 생존한 105명을 이끌고 북극권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뒤늦게 원정대를 찾아 나선 영국 해군은 킹윌리엄섬 주변에서 프랭클린 원정대 대원으로 보이는 수십 명의 유골 및 유품을 발견했다.
이후 학자들은 프랭클린 원정대원의 자손으로부터 DNA 샘플을 얻어 그간 발견된 유골의 신원을 특정해 왔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원정대원 1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2014년에는 에레버스 호의 잔해가 발견됐고, 최근 이 배를 지휘한 피츠제임스의 유골이 뒤늦게 수습됐다.
피츠제임스의 유골을 정밀 분석한 연구팀은 그간 떠돌던 프랭클린 원정대의 카니발리즘 의혹이 사실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영국 해군이 원정대원들을 수색할 당시 이누이트족은 1850년대 원정대 생존자가 동료의 시신을 먹었다고 증언했다. 1997년 연구에서는 발견된 인골의 거의 4분의 1에 베인 흉터가 있고, 거기서 사망한 인물의 일부가 카니발리즘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더글러스 교수는 "이번에 조사한 피츠제임스의 아래턱뼈에서도 사후 카니발리즘의 대상이 됐음을 시사하는 여러 개의 베인 흔적이 있었다"며 "이는 피츠제임스가 다른 선원들에 앞서 숨졌고, 이후 식량이 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19세기 유럽에서 카니발리즘은 도덕적으로 굉장히 비난받는 행위였다"며 "그럼에도 프랭클린 원정대 생존자들은 오직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에 예를 구하고 그 살점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인류의 카니발리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크게 사회적 식인과 병리학적 식인으로 구분되며, 전자는 문화의 일부로 용인됐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식인을 의미한다. 사회적 식인의 대표적인 예는 영화 '얼라이브'로 유명한 1972년 안데스산맥 항공기 추락 사고다. 당시 생존자들은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먼저 사망한 승객의 시신을 먹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