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모체 문화(Moche culture) 시대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여왕의 왕실이 발굴됐다. 모체 문화는 잉카 제국 이전에 페루 북부 해안가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한 프레 잉카 문화(Pre-Inca culture)의 하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7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페루 네페냐 계곡의 모체 문화 유적 파냐마르카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여사제 또는 여왕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공간이 나왔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사방에 그려진 벽화와 유물이 당시 모체 여성의 높은 지위를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모체 문화는 호화로운 엘리트 계층의 무덤과 고도의 기술로 완성한 건축물, 예술작품, 종교 유물과 회화로 잘 알려져 있다. 1950년대 발견된 파냐마르카 유적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은 계단식 연단과 벽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광장, 수많은 석조 건축물이 자리한다.
컬럼비아대 역사학자 리사 클레버 박사는 "파냐마르카 유적의 광장과 연단에 그려진 벽화들은 사제와 전사의 행렬, 초자연적인 생물들의 싸움, 두 얼굴을 가진 기묘한 남자, 포로에 대한 의식 등을 담았다"며 "70년 가까운 발굴 과정에서 여왕의 방이 페루에서 나온 것은 최초"라고 말했다.
이어 "왕좌를 중심으로 한 방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네 모서리의 기둥에는 권력을 가진 여성이 방문자 행렬을 맞이하거나 왕좌에 앉아 있는 4개의 서로 다른 장면이 그려졌다"며 "화려하게 치장한 남녀, 거미, 사슴, 개, 뱀을 묘사한 가진 전사들, 모체 신화 속 영웅과 바다의 적과 싸움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왕좌가 놓인 방에 권력자 여성을 나타내는 그림이 유독 많은 점에 주목했다. 이런 그림들은 왕좌 사이의 벽이나 기둥, 왕좌 자체에도 들어갔다. 여자들이 베를 짜는 작업장과 직물을 나르는 남자들의 행렬, 왕관을 쓰고 머리를 땋은 여왕 등 왕실과 민중의 삶을 연결한 벽화도 눈에 띈다.
리사 클레버 박사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창의성은 실로 놀랍다"며 "방 내부의 그림들은 고대 모체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왕좌의 등받이가 마모됐고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등 이 방에는 실제 여왕이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 생각이 맞는다면 이곳은 7세기 파냐마르카의 여성 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한 중요한 공간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벽화도 발견됐다. 인간의 다리가 달린 뱀이 뒤엉켜 있는 괴물은 모체 문화의 다른 유적에서 볼 수 없는 주제다. 의인화한 무기와 인간을 쫓는 거대한 괴물도 인상적이다.
리사 클레버 박사는 "광장 위에 우뚝 솟은 이 큰 방은 극장이나 경기장의 VIP석처럼 아래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내려다보는 위치"라며 "여왕의 권력을 드러낸 이 방에는 특권층을 위한 사적 공간도 존재한 듯하다"고 언급했다.
파냐마르카 유적의 고고학적 조사와 보존 활동은 최근 활발하다. 세계 각지의 전문가들이 팀을 짜 발굴과 연구, 문서화를 진행 중이다. 유물들이 파손되기 쉬워 현재 관광객들은 출입할 수 없으며, 페루 문화부는 유적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으로 먼저 공개할 예정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