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오래된 성당에 보존된 유골이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것이라는 주장이 또 제기됐다. 콜럼버스는 업적을 둘러싼 평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인물이고 죽음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아 이번 발표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스페인 그라나다대학교 법의학자 호세 안토니오 로렌테 연구원은 최근 지역 방송에 출연해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의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콜럼버스의 무덤 및 유골 특정을 위해 조사를 이어온 호세 연구원은 세비야 대성당 묘지에 안치된 뼈 샘플을 조사했다. 콜럼버스의 형제 디에고 및 아들 페르난도의 DNA를 입수한 호세 연구원은 이를 세비야 대성당 유골과 대조한 결과 혈연관계가 분명히 드러났다는 입장이다.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의 유골이 학자들의 주장대로 콜럼버스의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pixabay>

호세 연구원은 "최신 기술 덕에 세비야 대성당의 유골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것이라는 이전 가설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번 연구로 세비야 대성당 유골이 콜럼버스의 것이라고 100%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옛 가설이 맞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492년 망망대해를 건너 서인도 제도에 상륙한 콜럼버스는 유럽인이 볼 때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다. 다만 아메리카 원주민 입장에서는 대량학살을 일으킨 악마로 인식됐다. 지금도 엇갈린 평가가 계속되는 콜럼버스는 최후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이탈리아인인지 바스크인인지 포르투갈인인지 출생마저 불분명하다.

호세 연구원은 "콜럼버스는 죽은 뒤에도 복잡한 경로를 여행한 드라마틱한 인물"이라며 "콜럼버스가 1506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죽자 형제 디에고가 시신을 스페인 세비야로 운구했다. 1542년, 역사적인 항해 50년을 기념해 유해는 도미니카 산토 도밍고 대성당으로 다시 옮겨졌다"고 전했다.

역사가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콜럼버스는 행적과 죽음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pixabay>

콜럼버스의 유골은 1795년까지 산토 도밍고 대성당에 안치됐다가 스페인이 도미니카 공화국을 잃자 쿠바로 이동했다. 거기서 1세기를 보낸 뒤 유골이 세비야로 돌아왔다고 여겨진다. 콜럼버스가 평생 여러 곳을 탐험했듯 죽은 뒤 유골도 계속 이동했기 때문에 마지막 안식처를 특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호세 연구원은 "1877년 산토 도밍고 대성당에서 '저명하고 뛰어난 영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문장이 들어간 납 상자가 발견됐다"며 "상자에 든 뼛조각 역시 DNA 검사를 통해 세비야 대성당의 것과 동일하게 콜럼버스의 것일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콜럼버스는 미국에 지대한 영향을 준 탐험가지만 사실 북아메리카 본토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고 최초라는 수식어도 붙일 인물이 아니다"며 "이런 사실이 끈질긴 조사를 통해 밝혀졌듯, 그의 유골을 특정하는 작업은 미스터리한 콜럼버스의 생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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